더위 쫓기
더위 쫓기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8.1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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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 이야기
▲ 김태봉

여름 무더위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계곡이나 해변을 찾아가거나 부채, 선풍기 에어컨을 총동원해도 무더위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무더위에도 예외가 아니다. 무더위가 무섭다고 무조건 피해 도망 다니기만 하면 도리어 무더위에 당하기 십상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즐기는 편을 택하는 것이 낫다. 조선(朝鮮)의 시인 기대승(奇大升)의 눈에 여름 풍광은 마냥 정답기만 하였다.

 

여름 풍경(夏景)

蒲席筠床隨意臥(포석균상수의와) 부들자리 대나무 침상에 누우니
虛欞踈箔度微風(허령소박도미풍) 빈 창과 성긴 발로 미풍이 불어 든다.
團圓更有生凉手(단원갱유생량수) 둥근 부채질에 다시 서늘해지니
頓覺炎蒸一夜空(돈각염증일야공) 찌는 듯한 더위가 이 밤에 없어졌네.

 

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풍광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연못 가장자리에 빽빽이 자라나 있는 부들의 모습일 것이다.

이 보기만 해도 시원한 부들의 잎과 줄기를 엮어 만든 자리가 있으니, 이것을 펴고 그 위에 눕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더위는 사라질 것 같다.

부들 못지않게 시원한 것이 바로 대나무이다.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아 강직한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이지만, 여름에는 쭉 뻗은 모습과 푸른 빛깔로 시원한 모습을 뽐낸다.

외관으로만 시원한 것이 아니다. 물성(物性)으로도 대나무는 열을 빼앗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니, 대나무로 만든 침상은 보기에도 시원하고, 그 위에 맨살을 대고 누우면 더욱 시원하다.

방바닥에 깔아놓은 부들자리에 누웠다가, 대나무로 만든 침상 위에 누웠다가, 이렇게 하면서 지낸다면 한여름 무더위는 딴 나라 남의 얘기일 뿐이다. 여기에 아무것도 붙인 것이 없는 창문과 듬성듬성 성기게 얽어 있는 발을 통해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온다면 그 시원함이야 능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여름 무더위를 물리치는 퍼포먼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아직 남아있으니, 부채가 바로 그것이다. 둥그런 부채를 손으로 부치면 차가운 바람이 일고, 그 부채 바람에 쫓겨 찌는 더위는 끝내 방 밖으로 나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한여름의 무더위는 누구에게나 반갑지 않다. 때로는 무섭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러한 무더위에도 임자는 있게 마련이다.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을 통해 시원함을 느끼는 것이 한 방법이고, 바람을 잘 통하게 하여 더위를 쫓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기에 둥그런 부채가 가세하면 더위 걱정은 끝이 아닐까?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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