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라춘
벽라춘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08.0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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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벽라춘(碧螺春)이라고 들어보셨는지? ‘푸른 소라의 봄’, 직역하면 이렇다. 한자문화권에서 봄 춘 자를 좋아하는 것은 일상적이라서 춘 자가 마지막에 들어간 것은 중국집 이름일 수도 음식 이름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차다.

이름 참 예쁘다. 푸르다는 표현이 들어갔으니 녹차계열인 것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실상 색깔만 따지면 녹차보다는 청차(靑茶)에 가깝지만 우리식 분류로는 여전히 녹차에 속한다.

나는 운좋게도 스무 살 때부터 차를 얻어 마실 기회가 있었다. 내가 대만을 간다니 어떤 부인께서 두 종류의 차를 구할 수 있으면 구해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분이 말한 것은 ‘백호오룡’(白毫烏龍)과 위에서 말한 ‘벽라춘’이었다.

백호오룡도 대중적인 차가 아니라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바로 구했다. 백호는 차에 하얀 털이 나와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차에만 끼는 벌레의 흔적인데 이렇게 변한 차의 맛이 풍미가 좋아 오룡차 가운데 특품으로 친다. 약간 홍차의 맛이 가미된 오룡(우롱)으로 보아도 좋다.

최근에는 영국의 차 가게가 서울 잠심의 최고급백화점에 들어왔던데, 거기서 내 기억으로는 베코(bekko)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남방 쪽 중국어였으니 우리처럼 ‘k’ 발음이 살아있을 터이고, 그것을 영국 사람들이 표기했으니 그 정도의 철자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우리 발음이 /배코/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벽라춘은 구할 수가 없었다. 그저 상상 속에만 있던 차였다.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힌 채로 지냈다. 그러다 중국 소주(蘇州)의 여러 정원을 둘러보고자 그곳의 싸구려 호텔에 머문 적이 있는데 거기서 공짜로 제공하는 차의 향이 아주 좋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호텔에 내놓을 정도면 일반적으로 먹는 차일 텐데도 이 정도로 향이 좋다면 뭔가 계보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물어보니 바로 벽라춘이었다. 십여 년 전에 말로만 듣는 차를 직접 만난 기쁨은 마치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온 느낌이었다. 녹차이면서도 색을 잃지 않고, 색만큼이나 향을 담고 있는 중국남방의 녹차였다. 우리 집 며느리는 그렇게 예쁘고 격조가 있었다.

사실 우리 입맛에는 한국녹차가 제일이다. 구수한 맛으로 따질 것 같으면 우리 녹차가 최고인 것이다. 누룽지 맛 같은 고소함을 전세계 어떤 차도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누룽지 맛을 아는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일본 녹차는 내가 싫어했다. 비릿비릿한 풀냄새가 나는 싫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모든 차가 다 떨어지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 일본차라서 그거라도 감지덕지하면서 마침내 화해했다. 일본차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벽라춘은 한국차와 일본차 중간쯤의 맛이었다. 소주 옆 항주 쪽의 용정(龍井)은 찐 것 같아 맛이 둔한데 일본차도 색깔과 모양은 다른데도 그랬다.

차를 얼마나 좋아하면 그 우물을 찾아갈 정도였겠냐마는 썩 마음에 드는 맛은 아니었다. 우리 차는 크기가 정말 작지만 그 맛은 뾰족뾰족하다.

그러나 일본차는 둔하다. 둔하다는 것이 나쁜 표현이라면 망치 같다고 하자. 망치로 때릴 것이 있고 송곳으로 찌를 것이 있으므로. 그러나 벽라춘은 그 중간쯤이었다. 게다가 녹차를 오래 마시면 속이 얼얼해지는데 그것도 없었다.

오늘도 더운 여름에 뜨거운 녹차로 속을 차게 만든다. 녹차의 성질은 겉보기와 다르게 차다. 이열치열(以熱治熱)!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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