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접목 한국 금속활자 세계역사 변화 주도
과학기술 접목 한국 금속활자 세계역사 변화 주도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07.20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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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직지로 본 인류문명의 진화

뛰어난 한국 인쇄술… 비용·보관 한계 왕실활자로 활용

구텐베르크 정보·지식 대중화… 시민·산업혁명 이끌어

청주시 '유네스코직지상'한국 인쇄문화 세계화 출발점
▲ (위)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장 풍경-조선시대 다양한 활자, ▲(아래 왼쪽) 활자를 정리해 놓은 함, ▲(아래 오른쪽) 활자보관장

우리가 알고 있는 직지 앞에는 수식어가 많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찍은 책’을 필두로 청주 흥덕사에서 발행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직지의 고장 청주’, ‘금속활자의 꽃 직지’ 등의 말들이 직지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그럼에도 ‘직지’는 일반인들과 거리가 멀다. 원본이 국내에 없다는 이유 말고도 표피적인 지식에 국한된 정보에 머물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금속활자인쇄술과 직지가 서양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에 영향을 미치며 인류문명의 진화에 단초가 되었음이 밝혀지면서 직지를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연구자들의 조언이다. 最古라는 이름을 지워내고 책과 활자, 직지의 탄생과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직지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활자의 나라 조선을 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쇄문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연구가 미진하다. 책이라는 하나의 매체에도 종이와 먹, 활자는 물론 당시의 사회상과 문화상, 사람들의 삶까지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가 숨어 있지만 전문영역의 손길은 부족한 실정이다. 청주 역시 고인쇄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직지’에 대한 연구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관에서 ‘활자의 나라, 조선’전을 열고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발달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조선의 활자가 대규모로 시민들에게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활자를 보관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전시에서 17~20세기 초까지 중앙관청과 왕실에서 사용한 활자는 물론 활자보관장도 함께 선보였다.

박물관 측은 “82만여자에 달하는 조선시대 활자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 왕조에서 만든 활자가 이처럼 많이 남아있는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 찾을 수 없다. 특히 50만여자의 금속활자는 양적으로 세계 최대, 질적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조선시대 활자는 유교 통치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던 조선 통치자들의 원대한 포부의 상징이며 당대 기술과 예술의 정수이다”고 소개했다.

전시장에는 조선의 대표활자 만들기에 나선 세종대왕의 갑인자체 활자와 백성을 가르치려고 만든 한글활자, 숙종이 실록 간행을 위해 만든 실록자, 조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목활자 등이 공개됐다. 또한 처음으로 활자보관의 수수께끼를 푼 활자장과 연구과정을 담은 영상도 눈길을 끌었다.

과학기술이 접목된 금속활자 발명은 그러나 대중화되지 못했다. 금속활자본도 소량 인쇄에 그쳤다. 왕실에서 발간한 금속활자인쇄본은 지방으로 내려 보내 목판본으로 다시 만드는 기초로 사용됐다.

강민식 박사(백제유물전시관)는 “활자의 발달은 수요와 공급의 관점에서 보면 필사 후 목판, 다시 금속활자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량생산의 과정으로 보면 금속활자 이후 목판활자나 목판본이 더 많이 사용됐다”면서 “금속활자가 뛰어난 과학기술임에도 대중적으로 많이 사용되지 않은 것은 예산이 많이 들고 보관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장을 찍을 수 있는 효율성에서 떨어져 주로 왕실활자로 활용됐다”고 말했다.

# 직지와 쿠텐베르크의 갈림길, 다시 직지세계화로

한국의 금속인쇄문화는 12세기경 동서양의 교류를 통해 서양에 전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8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한 세계 연구자들이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서양에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무게를 둠으로써 ‘직지’를 대표하는 한국인쇄술이 세계 인쇄사에 큰 역할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미국의 전 부통령 앨 고어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기술이 한국을 방문한 교황사절단으로부터 전달되었다는 것으로 이러한 사실은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에서 확인했다”고 말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류문명의 변화에 씨앗이 되어준 직지는 그러나 한계점도 분명하다. 서양의 구텐베르크가 정보와 지식의 대중화로 세계변화를 이끌었다면 직지는 소수를 위한 지식정보였다는 사실이다. 구텐베르크가 정보의 대중화에 속도를 내면서 종교개혁과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끌어내며 세계 강대국으로의 면모를 갖출 수 있었다.

반면 직지는 뛰어난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귀족이나 양반 등 소수 층에만 향유 되었다. 지식과 정보의 공유와 대중화 측면에서 세계변화를 주도하는 데는 실패했다. 현실적 필요를 변화로 이끌어내지 못한 한계가 인쇄문화의 메카라는 당당한 자부심에도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직지의 미래는 한계를 보였던 그 지점에 있다. 변화에 실패한 과거를 뒤집어 변화를 주도하는 직지로 나아갈 때 미래는 시작된다고 본다. 구텐베르크를 통해 정보와 지식을 나누며 세계 변화를 꿈꿨던 사람들의 정신이야말로 직지가 받아들일 미래이다.

이는 청주시의 미래이기도 하다. 직지 세계화를 위한 청주시의 도전은 유네스코 직지상을 통해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유네스코와 손잡고 세계기록문화유산을 조명하는 직지상은 한국의 인쇄문화와 청주의 위상을 높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연지민기자

annay2@hanmail.net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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