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 묵다
강가에 묵다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7.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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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요즘처럼 육상 교통이나 하늘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에, 수상 교통은 사람들에게 가장 요긴한 이동 수단이었다. 낮 동안 배를 타고 이동하다가 날이 저물면 강가에 배를 정박하고 묵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배를 타고 여행 중에 타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면,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唐)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은 어느 날 건덕강(建德江) 강가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건덕강에 묵다(宿建德江)

移舟泊煙渚,(이주박연저), 배를 저어 안개 낀 물가에 대어놓으니

日暮客愁新.(일모객수신). 날 저물어 나그네 수심 새로워라

野曠天低樹,(야광천저수), 들은 드넓어 하늘이 나무 밑으로 내려오고

江淸月近人.(강청월근인). 강은 맑아 달이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오네


시인은 절강성(浙江省)을 가로질러 흐르는 신안강(新安江)을 배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마침 건덕현(建德縣)을 지날 무렵 해가 저물어 그곳 강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배를 정박한 강가는 마침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강에 안개가 낀 모습은 일견 운치가 느껴지겠지만, 마음이 바쁜 나그네에게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도리어 앞으로의 뱃길을 걱정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저녁도 마찬가지이다. 보통은 노을이 고운 해질 무렵은 아름답게 느껴지겠지만, 나그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갈 길이 먼 나그네는 해가 저물면 더 마음이 급해지게 마련이고, 그래서 객수(客愁)가 새롭게 다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나그네 시름을 달래는 방법은 무엇일까? 술이 있으면 술 한 잔으로 시름을 달랠 수 있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이때 뜻하지 않게 원군(援軍)이 나타났으니, 배를 정박한 곳의 주변 경관이 그것이다.

멈춘 배에서 주변을 살피던 시인의 눈에 들판이 먼저 들어왔다. 들판이 어찌나 넓던지, 들판 끝에 걸친 하늘이 나무 아래로 내려와 있을 정도였다.

시인은 먼 데서 눈을 거두어 가까이 있는 강물로 눈길을 돌렸다. 가까이 보자 강물은 어찌나 맑던지, 강물에 비친 달이 시인의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늘을 나무 밑으로 끌어내린 넓은 들판과 달을 가까이 보내 준 맑은 강물에 시인의 객수(客愁)는 다소간이라도 위안을 받았으리라.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만 가는 속성으로 인생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래서 강물을 타고 하는 여행은 인생의 여정과 극적으로 닮아 있는 것이 아닐까?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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