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화장실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07.06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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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읽기
▲ 정세근

화장실 문화도 가지가지다. 중국 대도시 서민의 집에는 별도의 장소가 없어서 공중화장실을 이용한 것이 얼마 전까지 일이다. 칸막이도 없이 한 줄로 앉아서 앞사람 것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면서 용변을 보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내 것은 내 뒷사람에게 가고, 앞사람 것이 내 자리에 오는 것을 보면서 근심을 풀었다. 요즘도 지방의 오래된 건물은 칸막이 정도가 전부인 경우가 많다. 당시 중국인들은 북경의 국제공항인데도 문을 열어놓고 볼 일을 보았으니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정반대는 무슬림이다. 여성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못 입게 하는 것은 유명하지만, 남자도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남자도 엉덩이가 감춰지는 긴 윗도리를 입는다. 무슬림 남자가 화장실에서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경우를 종종 보았는데, 그것은 그들의 단정함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터키의 사우나에서도 남자끼린데 치부를 감추는 분위기를 실감한 적도 있다. 한국식으로 내놓고 다녔다가 이게 아니구나를 실감했다. 독일 여자들이 내놓고 사우나를 하는 것과는 정반대다-물론 그들은 땀을 수건에 담지 않고 이리저리 흘리는 것은 질색한다.

한국인들이 한다면 한다는 것을 느낀 것이 화장실 문화다. 10년도 되지 않아 우리 고속도로의 화장실이 깨끗해지는 것을 보고 난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느꼈다. 되는구나, 우리나라! 이제 우리의 공중화장실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거꾸로 이제 다른 나라를 갈 때마다 불편함이 커졌다. 스무 살에 미국부대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화장실마다 휴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대학도 휴지를 비치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다. 대신 일본과 다른 것은 일본은 이제 거의 비데가 있다는 점이다.

화장실의 충격은 역시 인도다. 휴지를 쓰지 않아 어떤 화장실에도 물이 나온다. 기차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의 문명비판가 기소르망은 ‘개인위생에 철저하다’고 쓰기도 했다. 아침마다 깡통을 하나씩 들고 바다로 향하는 풍경은 가관이다. 기차가 지나는 빈민가 철도 길은 걷기가 힘들 정도로 곳곳이 폭탄이다. 그러나 내가 관점을 바꿀 정도로 감동받은 것은 콜카타(캘커타)역 앞 녹지에서 볼일을 보던 친구 때문이었다.

그렇게 많은 버스가 지나가는데도, 그렇게 택시가 빵빵거리는데도 어쩜 그렇게 늠름(凜)하게 볼일을 볼 수 있는지? 인도인들도 무슬림처럼 몸이 가려지는 옷을 입긴 하지만, 내가 못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늘 존경스럽다. 그래서 어떤 시인이 사막을 여행하다 볼일을 보려고 공연히 멀리까지 가는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인도인을 적어놓았던가.

얼마 전 청주역에서 여자화장실로 들어갈 뻔했다. 남자변기가 보여서 들어가려는데 뭔가 이상해서 쳐다보니 여성용이었다. 볼일을 보면서 생각했다.



1. 트랜스젠더를 위한 것인가? 그러나 제대로 된 성전환자는 앉아서 볼일을 볼 터인데.

2. 그럼, 최근 중성화장실을 설치하는 미국처럼, 본인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거기서 볼일을 보게 해놓았나?

3. 아니, 우리 철도청이 그렇게 진보적일 수가?

나오다가 청소아줌마를 만나 물어보았더니, 여성이 동반한 아이를 위한 설비란다. 그래서 가만히 보니 일반소변기보다는 좀 작아 보이기는 했다. 더 작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물어보니 고속도로 휴게소는 10년 전부터 그렇단다.

내가 여자화장실을 모르듯, 여성이 모르는 남자화장실의 문구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죠~’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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