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서 찾은 직지, 세계 인쇄역사를 바꾸다
프랑스서 찾은 직지, 세계 인쇄역사를 바꾸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06.22 1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 바꾸고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기까지 박병선 박사 큰 역할

1972년 5월 29일 파리 ‘세계도서의 해’ 기념 책 전시회서 공인


1985년 청주서 흥덕사라는 글자 새겨진 청동금구·불발이 출토

탄생의 비밀 608년만에 봉인 해제… 한국 금속활자 발명 실증

충북 청주시는 현존하는 세계 最古 금속활자본 직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를 간행한 곳이다. 고려시대 흥덕사에서 만들어진 이 책은 청주는 물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 문화재이다. 특히 2001년 9월 4일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직지를 등재함으로써 기록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후 청주시는 2003년부터 9월 4일을 전후로 매년 직지축제를 개최했다.

하지만, 청주의 상징으로 브랜드화하면서 추진한 직지축제는 예산과 규모 면에서 지역축제라는 한계를 벗지 못한 채 시민참여가 떨어졌다. 직지 원본은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수장고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치러야 하는 축제는 응집력이 없었고, 일관성 없는 행사가 이어지면서 직지축제에 대한 새로운 가치정립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청주시는 직지축제의 격을 높여 올해 첫 국제행사로 승인받았다. 총 4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행사는 9월 1일부터 8일까지 직지코리아 ‘직지, 세상을 깨우다’란 주제로 다채로운 행사를 펼칠 계획이다.

본보는 직지 원본이 소장된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과 독일 마인츠의 구텐베르크박물관을 탐방해 기록의 혁명을 가져온 세계기록문화유산의 가치를 소개한다. 또한, 기록유산을 보존하는 그들의 노력과 자긍심, 그리고 문화자원으로의 활용방안을 모색해 직지를 통한 새로운 미래혁명을 조망하는 기획시리즈(9회)를 연재한다.


기록의 혁명,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를 찾아서

① 직지의 발견, 그 가치와 의미

1972년 5월 17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세계도서의 해’기념 책 전시회가 열린다. 유네스코가 1972년을 ‘세계 도서의 해’로 지정하면서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은 ‘책’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세계 각국의 도서가 전시된 이 행사장은 세계기록유산의 역사를 바꾸는 획기적인 자리가 된다. 동양에서도 고려라는 작은 나라에서 1377년에 발간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직지)’이 595년 만에 머나먼 이국 땅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파리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직지’가 수장고를 벗어나 전시회에 출품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이는 독일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70년 이상 앞선 것으로 기록의 역사를 앞당기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 직지의 또 다른 이름, 박병선 박사

이처럼 한 권의 책 ‘직지’가 세계 역사를 바꾸고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기까지 박병선 박사의 역할이 컸다. 파리국립도서관 수장고에서 잠자던 ‘직지’를 깨운 사람이 바로 박병선 박사다.

서른세 살의 나이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던 박 박사는 1967년부터 파리국립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우리나라 고서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세계 도서의 해’기념 책 전시회에 내놓을 한국 작품을 찾던 중 도서관 내 동양문헌실에서 가로 17㎝, 세로 24.6㎝의 작은 책을 발견한다.

책 맨 뒷장에는 누군가가 프랑스어로 ‘1377년 금속으로 찍은 활자본’이라고 써 놓은 메모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전복하는 문구였다.

박 박사는 이를 고증하기 위해 자료수집과 활자연구에 매진한다. 노력에 화답하듯 1972년 5월 29일 파리 ‘세계도서의 해’기념 책 전시회에서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는다.

책 전시회가 끝나고 박 박사는 직지의 흑백사진을 가지고 귀국해 국회도서관에 감정을 의뢰했고, 한국정부는 1973년 프랑스의 도움으로 직지 영인본을 발간한다.

직지의 실물이 공개되면서 이 책은 고려 공민왕 때인 1377년 7월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사실이 밝혀진다. 백운화상이 중국 송나라의 전등록에서 역대 불조들의 법화를 뽑아 엮은 이 책은 상·하권으로 발간되었고, 1972년에 공개된 ‘직지’하권은 백운화상이 입적한 지 3년 후 제자들에 의해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어냈음이 확인된다.

# 직지, 두 번째 기적

하지만, 책을 간행한 흥덕사는 오리무중이었다. 세계 기록의 배턴을 이어받을 뿌리의 부재는 반쪽짜리 문화유산으로 남을 가능성이 컸다. 흥덕사라는 난제 앞에 직지의 두 번째 기적은 청주에서 일어난다. 1985년 청주 운천동 사지발굴조사 중 새로운 절터에서 흥덕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동금구와 불발이 출토된 것이다. 베일에 싸여 있던 직지 탄생의 비밀이 608년 만에 봉인을 푼 것이다.

당시 발굴조사 과정에 대해 박상일 박사(청주대학교 박물과)는 “절 이름이 흥덕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85년도이다. 그 당시는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때”라며 “직지를 인쇄한 청주목 흥덕사는 기록이 없어 그 위치를 확인할 수가 없었는데 1985년 10월 8일 택지공사로 훼손된 사지의 동쪽에서 “興德寺”銘 禁口片이 발견 수습됨으로써 이 사지가 직지를 간행한 흥덕사임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승철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직지의 가치에 대해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된 책으로서의 직지의 본질적 가치가 있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복합적 가치가 존재한다”면서 “그 중 한국의 금속활자 발명을 실증하는 창조적 가치는 지난 천 년 세계 최고의 발명품으로 인류 석학들이 금속활자 발명으로 선정한 것처럼 직지가 가진 최고의 가치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계 역사를 바꾼 책 ‘직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빛을 발하기까지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고려시대를 시작으로 거대한 역사의 파고를 넘어 프랑스로 넘어가기까지, 파리도서관 수장고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그리고 청주 흥덕사가 직지의 뿌리로 밝혀지기까지의 여정은 지난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연지민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