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느낌
여름 느낌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6.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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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보통 여름은 사람들이 썩 좋아하지 않는 계절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여름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무더위를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면, 여름이 좋을 리가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이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여름 무더위는 사람이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를 싫어하고 짜증 내 본들 본인만 더 힘들어진다.

이런 경우 차라리 여름의 좋은 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즐기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송(宋)의 시인 소순흠(蘇舜欽)은 여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여름 느낌(夏意)

別院深深夏簟淸(별원심심하점청) 별채 깊은 곳에 여름 돗자리 정갈하고

石榴開遍透簾明(석류개편투렴명) 석류꽃 활짝 피어 주렴 밖이 환하네

松陰滿地日當午(송음만지일당오) 소나무 그늘은 한낮의 마당을 덮고

夢覺有鶯時一聲(몽각유앵시일성) 이따금 꿈 깨우는 꾀꼬리 소리 들리네



여름은 무덥다. 특히 낮은 무덥다. 이처럼 무더운 여름 낮을 지내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여름 낮이 마냥 미운 존재만은 아니다.

유심히 뜯어보면 여름 낮에만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정경이 한둘이 아니다. 집 안 깊숙한 곳, 그곳이 대청마루든 안방이든 거기에 깔려있는 돗자리도 그 중 하나이다.

돗자리는 여름 더위가 아니었으면 전혀 존재감이 없었을 터이지만, 여름 더위로 인해 비로소 귀하신 몸으로 거듭나게 된다. 깨끗하고 뽀송뽀송한 돗자리를 시원하게 바람이 통하는 대청마루에 깔고 누워 있다 보면 여름 더위는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대청마루 돗자리에 시원하게 있다 보면 심신이 편안하고 여유로워지기 마련이라서, 주위의 정경들이 정겹게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문밖 마당의 석류가 꽃이 한창이다.

주황빛 꽃망울을 활짝 터뜨려서 그 빛이 얼마나 강렬하든지 주렴을 치고 있었음에도 밝음이 느껴질 정도이다. 매력적인 여름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당 먼 쪽 우뚝 솟은 소나무가 만들어 주는, 마당 가득한 그늘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여름 정경이 아니던가? 여기에 하나가 더해지면, 이른바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완성될 터인데, 여름 낮의 더위를 무색게 하는 꾀꼬리 소리가 그것이다. 그것도 여름 낮잠의 단꿈을 깨우는 꾀꾀리 소리 말이다.

여름은 무덥지만, 그 무더위로 인해 여름만의 정경이 있는 것이니, 더위를 탓할 일만은 아니다. 대청마루의 돗자리, 주렴 새로 비치는 석류꽃의 주황색 빛, 소나무가 만든 마당 그늘, 여기에 꾀꼬리 소리가 있어 여름은 즐겁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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