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 시스템
불운의 시스템
  • 박경일<명리학연구가>
  • 승인 2016.06.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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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로 보는 세상이야기
▲ 박경일<명리학연구가>

토끼와 거북이 중에 어느 동물이 더 우월한가? 그런 건 없다. 달리기를 할 때는 거북이가 열등해 보이고 수영을 할 때는 토끼의 능력이 부족해 보일 뿐이다. 사람들의 직업은 능력과 기회로 결정되지만 필자는 그게 다 운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운은 개인의 노력과 기회가 주어지는 과정을 다 포함한 말이다. 그러니 노력 없이 저절로 되는 것만을 ‘운이 좋다’라고 오해하지 말자.

IT전문가이면서 기업의 CEO이고 세계적 석학이라고 하는 안철수도 아마존 오지에서 태어났다면 그냥 물고기 잡고 사는 거다. 머리가 좋으니 고기는 좀 많이 잡으시려나? 사람이 태어날 때 자신이 살 나라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순전히 운이다.

다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로 돌아가자.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열심히 노력하면 거북이도 토끼를 이길 수 있다’가 아니다. 진짜 교훈은 거북이하고 토끼하고 달리기를 시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시스템인 것을 깨닫는 데 있다. 거북이는 단지 운수 사나워 토끼와 달리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거북이가 열등한 것이 결코 아니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잠깐만~’하는 시그널과 함께 어느 여자 분의 이야기가 나왔다. 어린 시절 발레리나를 꿈꾸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고 방송국 일도 해보고 기자도 해보고 연기도 해보았다는 거다. 이제 서른 정도가 되었는데 젊은이들도 이런저런 하고픈 일들에 도전해보라는 취지의 얘기다. 듣다가 좀 짜증이 났다. ‘누구는 그러기 싫어서 안 그러냐고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성공한 이들은 자신이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을 잘 모른다. 그러니 성공한 사람들의 비법이 있는 것처럼 무슨 습관이 어쩌고저쩌고하는 책들을 팔고 있겠지. 낯도 두꺼워라.

사람이 운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 세 가지가 있다. 첫째가 먹고살 수 있는 밥벌이요, 둘째가 자아실현을 위한 공부, 셋째가 자기 수양이다. 운이 없는 이들도 마땅히 누려야 할 이 세 가지가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건 불합리한 세상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지난해 8월에 있었던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건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구의역에서 안전문을 고치다 열차에 끼여 생을 마감한 김군은 다음 날이 생일이었다. 그의 공구가방 속에 들어 있던 먹지 못한 컵라면과 숟가락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미어진다.

김군의 회사는 메트로로부터 일감을 받는 대가로 인건비와 노사관리 부담을 떠안았으며, 이렇게 생긴 부담은 비정규직과 청년층의 인건비 절감에서 메웠다. 경영의 효율화는 비정규직과 값싼 임금을 받는 청년층이 이루었는데 효율로 얻은 이익을 분배하기는커녕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미친 세상이다. 스크린도어 수리 인력은 125명이지만 실제 업무는 87명이 도맡았으며 업무능력과 상관없이 메트로가 꼽아놓은 낙하산 퇴직자들의 월급 442만 원을 챙겨주기 위해 김군은 월급 144만원의 박봉에 시달려야 했다. 외주화와 하청을 통해 소수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시스템으로 결국 김군은 사망하였다. 김군이 사망하자 매트로 측은 개인의 실수와 불행으로 사건을 매듭지으려 했다. 다른 하청업체의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

얼마 전 스위스가 전 국민에게 한화 300만 원에 해당하는 기본소득을 매월 조건 없이 지급하는 안을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운이 없는 이들에게 기회의 균등은 그림의 떡이다. 결과의 평등을 이루려는 국가차원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직은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한 사람, 가난한 환경에 처한 사람, 몸이 불편한 장애인 등 누구라도 일하고 공부하며 인문 서적을 읽고 꿈을 향해 자기 수양을 하며 때를 기다릴 수 있는 여유로운 세상이 상식이어야 한다. 김군의 죽음은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나의 죽음이요 우리의 미래인 자식세대의 불행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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