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산사에서
봄날, 산사에서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5.2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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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봄의 이미지는 한가함이나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다.

꽃이며 풀이며 나뭇잎이 피고 돋느라 봄날 대지는 한가할 겨를이 있을 수 없다.

또한 새소리 물소리로 봄날 산속은 결코 고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분주하고 요란한 봄날에도 한가롭고 고요한 곳이 있으니, 산속의 절이 그러하다.

더구나 절을 지키는 스님마저 출타하고 없다면, 산속의 절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일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김시습(時習)이 봄날 찾은 산속 절의 모습이 꼭 이러하였다.



봄날, 산사에서(春遊山寺)

春風偶入新耘寺(춘풍우입신운사) : 봄바람이 불어 우연히 신운사에 들려보니

房閉僧無苔滿庭(방태승무태만정) : 스님도 없는 승방, 뜰에 이끼만 가득하다

林鳥亦知遊客意(임조역의유객의) : 숲 속의 새들도 나그네 마음을 알고

隔花啼送兩二聲(격화제송양이성) : 꽃 너머로 새는 두 세 울음을 울어주네



봄바람은 사람을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집안으로 불어온 봄바람에 춘흥(春興)이 동한 시인은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이곳저곳을 거닐다가 우연히 시인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신운사(新耘寺)라는 산사(山寺)였다.

그런데 시인이 그곳에서 만난 것은 봄의 일반적 풍광과는 거리가 멀었다. 화려한 꽃도 보이지 않았고, 재잘대는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화창한 봄날이라 방문이 열려 있을 법하지만, 웬일인지 방문은 닫혀 있었다.

스님이 어디론가 출타하고 절에 없었던 것이다. 스님이 절을 비운 것이 오래되었는지, 절 마당에는 가득 이끼가 돋아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사람의 왕래가 뜸했을, 깊은 산 속 절이었는데, 그곳을 홀로 지키던 스님마저 자리를 비운 지가 오래되었으니, 절은 무인지경에 적막강산 그 자체였을 것이다.

봄이 되어 온 세상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건만 유독 이곳만은 봄이 피해 간 것처럼 꽃 대신 이끼가 가득 끼어 있었다.

스님의 독경소리가 끊긴 지 오래고, 대신 들리는 게 있었으니, 바로 숲 속의 새소리였다.

봄을 기대하고 우연히 절에 들른 시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새가 두세 번 소리 내어 울어주었고, 소리 난 곳을 돌아보니 봄꽃이 환하게 피어 있었고, 새는 꽃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다.

사람마다 봄을 느끼는 것은 다를 것이다.

꽃이 만발한 곳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봄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적이 끊겨 이끼 낀 절 마당에 들려온 새소리와 그 새를 가린 꽃에서 봄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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