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인문학도여!
오라, 인문학도여!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03.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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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대학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인문학자들이다.

대학의 시작은 인문학이었으나, 현재의 대학은 인문학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몰아낼 기세다.

어떤 인문대 교수님은 ‘인문학은 돈을 쓰는 학문이지 버는 학문인갗라고 원초적으로 불만을 토론했지만, 글쎄, 장기적으로 보면 모를 일이다. 인문학자가 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남을 벌게는 잘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돈 잘 버는 분들이 돈 못 버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관용적인 시선을 보내주시기 바란다.

정부도 그랬다. 국립대학의 기초학문은 보호해야겠다는 의지로 인문대의 정원조정이 전제되는 사업은 ‘국립대학 해당 무’로 시작했었다. 그런데도 어찌 된 일이지 국립대학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인 순수학문의 발전은 점차 뒷전으로 밀렸다. 그러나 여론 탓인지, 명분 탓인지, 투정 탓인지, 국가는 마침내 인문학육성사업에 돈을 대기로 했다.

목표는 컸다. 연 1200억을 목표로 뛰어보았으나 400억으로 깎이고, 조금 심했는지 결국은 600억으로 기획재정부에서 받아들였다. 우리 대학도 연 36억씩 받기로 되었으니 정말 잘 된 일이다. 아직까지는 충청권에서는 우리가 유일하게 지원비를 받게 되어 책무감이 크다.

임용된 지 며칠 안 된 어떤 국립대 인문대학장은 오늘 전화를 해서 당장에라도 배우러 오겠단다. 곧이어 있을 추가모집에도 안 되면 총장이 자르겠다고 했다면서 엄살을 부렸다. 규모가 아무리 크지만 인문대학 교수들의 절반이 참가를 안 했으니 안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여러 입장이 있었지만 대의를 보고 전원이 서명했다.

중요한 것은 세 가지다.

사업계획에도 있지만 거교적인 인문학 부흥사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 국립대 철학과목은 통틀어 천명이 수강한단다. 내수가 받혀주어야 수출도 된다. 그리고 공부를 하려면 사람부터 되어야 한다.

다음, 3년 후의 평가를 준비해야 한다. 나랏돈이다. 국민의 세금이다. 연차평가도 있겠지만 3년 후에 또 되어야 한다. 그리고는 또다시 3년이다. 발표되던 날 연구재단 쪽에서 축하전화가 왔다. 그러면서 예산을 3년 후에는 900억, 또 3년 후에는 1,200억으로 만들잔다. 원안이 바로 그 액수였다.

셋째, 가능할지는 몰라도 이는 우리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충청권, 적어도 충북의 인문학을 이끌어가야 한다. 거점국립대학으로서의 베풂이 필요하다. 요즘 평가기준에는 사업의 확산도 점수에 들어간다. 적어도 그런 내용이 담겨 있으면 점수 잘 받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남들을 바보로 여기는 순간, 자기는 더 바보가 된다. 가장 어리석은 것이 남들이 모를 것이라는 착각이다. 남들도 다 안다. 남들도 나만큼 똑똑하다. 따라서 일마다, 때마다 물어야 한다. ‘진정 이것이 학생을 위한 일인가?’ 하고, ‘진정 이것이 학문을 위한 일인가?’ 하고 말이다. 아니, 인문학자답게 이렇게 묻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가?’

어떤 지방 국립대 철학과가 전국에서 제일 잘 나가길래 초청해서 비결을 들었다. 대도시, 지역적 특색, 서울과의 거리 등등 어떤 이야기도 설명이 잘 되지 않았다. 결론은 결국 돈이었다. 사업비로 대학원을 활성화함으로써 학문 중간계층이 도타워진 것이었다. 교수가 안 돼도 인문학도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우리도 대학원에 진학하면 학부부터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오라, 순수학문의 맛을 즐기는 젊은이들이여!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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