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미, 칠월의 솔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하은아<증평도서관>
  • 승인 2016.03.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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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

어떤 새로운 일을 하게 만드는 힘은 호기심이다. 아주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그 분야의 전문가를 만들기도 하고 덕후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소설 덕후일 것이며, 좋게 말하면 전작주의자이다. 미디어를 통해서 혹은 누군가의 추천 또는 어쩌다가 알게 된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의 전작을 다 찾아 읽게 된다. 그리고 관심작가로 등록하고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알람 울리는 시계처럼 서점 사이트에서 구매버튼을 누른다. 그런 작가가 하나 둘 늘다 보니 책도 많아진다. 이런 습관이 좋지 않은 것은 책을 대할 때 숙제를 하는 학생의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강박증처럼 새 책을 구매하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구매하고 읽지 않은 채 쌓여가는 책이 점점 많아진다. 또 쌓인 책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숙제검사를 못 받아 불안한 학생처럼.

‘사월의 미, 칠월의 솔’(김연수 저·문학동네) 이 책도 김연수 작가의 새 책 소식에 무턱대고 구매하고 그냥 방치했었다. 나름 현학적인 문체와 왠지 어눌한 말투를 하지만 소신껏 조근조근 이야기 할 것 같은 작가의 매력에 그의 작품을 읽고 사서 모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손에 잡히질 않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였던 것도 아니었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한두 장 읽고 미뤄두기를 몇 번하고는 그냥 책장에 꼽아버렸다. 이번에 마음을 다잡고 읽었다. 이 책을 안 읽으면 영 개운치 않을 마음에 계속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사월은 미이고, 칠월은 솔인지 궁금했다. 라도 있고, 도도 있지 않은가.

짤막짤막한 소설을 이은 단편집인 이 책을 왜 그리 읽지 못했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냥 내 맘이 그랬나 보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이때에 읽으니 마음이 더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책인데 말이다. 너무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읽어보려 해서 안 읽혔나 보다. 제주도의 쪽방에 빗소리는 4월에는 미 소리를 내고 7월에는 솔 소리를 낸다고 이 책의 한 꼭지 소설 속 주인공은 말한다. 나도 가만히 누워 양철지붕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듣고 싶어진다. 5월의 빗소리는 어떤 음일지, 6월의 빗소리는 어떤 음일지 가만히 느껴보고 싶다.

그동안 일상에 지쳐 책을 숙제하듯 읽어버렸다. 그런데 왜 책을 읽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마음이 따뜻해지고자 나는 책을 읽었다. 나만의 시간을 찾고, 그 시간 동안 나름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 책읽기였던 것이다. 비록 짧은 단편 소설집인 이 책이 내가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해 정확히 답해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와인 한 잔에 얼굴 불그래지고 기분 좋아 마냥 웃는 예쁜 아가씨의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냥 단순한 이야기들일 뿐인데 아이처럼 웃게 하고 울게 하는 내용으로 살아감에 지친 나에게 위로를 받는다.

마음을 달래는 많은 방법을 갖는다. 어떤 사람을 술을 마시고, 어떤 사람은 잠을 자고, 어떤 사람은 수다를 떤다. 따듯한 봄볕에 앉아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속에 사는 또 다른 우리가 말을 걸 것이다. 마음이 설레고 따듯해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사월의 미도, 칠월의 솔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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