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글씨
사라진 글씨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03.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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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일요일에 검은 운동복 차림으로 학교에 왔다. 신학기를 맞이해서 정리 좀 하려는 계획이었다. 먼지투성이 속에서 마음 편히 일할 요량이었다.

발 디딜 틈이 없어 나 자신도 짜증이 나기 시작한데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학생들이야 서 있기라도 하지, 다른 손님에게는 예의가 아닌듯했다.

인문학자야 좀 벌레와 사는 데 익숙하지만 모르는 사람이야 책에 치여 사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연구실은 나를 위한 방이라기보다는 책을 위한 방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방법을 강구해보기도 한다. 양쪽 벽에 책꽂이를 놓고 가운데 책상을 평행으로 놓아본 적도 있지만 너무 활동공간이 없었다. 창을 등지고 앉는 것이 일반사무실에서는 많이 볼 수 있지만 우리처럼 모니터를 쓰는 사람에게는 반사광 때문에 불편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책상이 서쪽 벽에 붙이는 오늘의 형태로 낙찰됐다.

정리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먼저 제대로 공부하려면 책을 진열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겹겹이 놓다 보니 속에 숨어 있는 자료도 있고, 할 일이 눈에 띄지 않아 잊어버린 것도 있었다. 주제별로 쇼핑백에 담아두었다가 논문이 끝나면 버리는 식인데도 여전히 쌓인 것이 많다. 그래서 인문학자들이 시골로 들어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 제목이라도 늘 보려고.

나에 대해서도 반성했다. 웬 욕심이 이리 많은지? 아니면, 왜 이렇게 게으른지? 잡아놓은 주제, 써야 할 논문은 많은데 도대체 이루어놓은 것이 없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할 수 있는데도 게을러 안 하는 것인지? 내가 원망스러웠다. 공부욕심이라고 자위하기에는 안 된 일이 너무 많았다. 뭉텅이 자료가 여전히 굴러다녔다. 일본 것, 인도 것, 미국 것, 중국 것….

버려야 하는가? 어차피 못할 것을 욕심만 부리는 것 아닌가? 정작 해야 할 일은 못하고 쌓아놓고 세월만 보내는 것은 아닌가? 빨리 끝날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 어리석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단타로 인생 끝내는 것은 아닌가? 무엇이 중요한가? 중요한 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공부욕심도 욕심 아닌가? 욕심 넘어 행복의 길이 있는 것 아닌가? 오늘 못하면 내일도 못하는 것이고, 올해 못하면 내년에도 못하는 것 아닌가?

아침 7시부터 시작해서 12시간 내내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분리수거 옆에 종이상자가 쌓일수록 더욱 그랬다. 게다가 황당한 일을 발견하고는 참으로 싱숭생숭했다. 이런저런 일들을 포스트잇에 써 붙여놓았는데 어느덧 글자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테이프로도 붙여놓은 것을 보니 중요한 것 같은데 햇볕에 날아 가버린 것이다.

장자는 양생주(養生主) 편을 이렇게 시작한다. ‘내 삶은 끝이 있는데, 앎은 끝이 없다.’(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 유한한 놈이 무한한 일을 벌이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스피노자는 윤리학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쾌락을 억제해서 지복(至福)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복을 누리기 때문에 쾌락을 억제할 수 있다.’(제5부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정리 42) 공부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서 공부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어쩔 수 없다. 글씨는 사라진다. 그러나 나는 적을 수밖에 없다. 글을 쓰기에 기쁜 것이 아니라 기뻐서 쓴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물었다. 먹이 없을 때 오징어 먹물이 좋을지 낙지 먹물이 좋을지를. 나는 알았다. 비록 흐려지더라도 연필은 남는데 잉크는 아예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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