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겨울 매화
산골의 겨울 매화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2.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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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조선(朝鮮)의 시인 신흠(申欽)은 그의 시 야언(野言)에서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라고 읊은 바 있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매화는 겨울을 대표하는 꽃으로 기품과 동시에 지조를 상징한다.

세한삼우(歲寒三友) 중 소나무와 대나무가 겨울을 견디어 낸다면 매화는 겨울을 달래고 어루만지어 아무 일 없이 지나가게 한다고 할 수 있다.

매화의 은근한 향기에 사나운 겨울은 나긋나긋 봄에 자리를 양보하고, 그래서 결국은 꽃의 계절 봄이 도래하게 된다. 송(宋)의 시인 임포(林逋)는 겨울 해질 무렵 산촌에서 우연히 매화와 맞닥뜨렸다.


산원소매(山園小梅)-임포(林逋)


眾芳搖落獨暄姸(중방요락독훤연) : 온갖 꽃은 떨어져도 홀로 화사하고 고아

占盡風情向小園(점진풍정향소원) : 풍정 모두 차지하고 작은 동산에 있네

疎影橫斜水淸淺(소영횡사수청천) : 얕고 맑은 물에 성긴 그림자 드리우고

暗香浮動月黃昏(암향부동월황혼) : 황혼의 달빛 아래 은은한 향기 떠오르네

霜禽欲下先偸眼(상금욕하선투안) : 겨울새는 내려앉으려 먼저 살피고

粉蝶如知合斷魂(분접여지합단혼) : 흰 나비 그 향기 알아 만나자 혼미하네

幸有微吟可相狎(행유미음가상압) : 다행히 조용히 시 읊으며 친할 수 있으니

不須檀板共金尊(불수단판공금존) : 어찌 노래와 술이 반드시 필요하리오





매화는 다른 꽃이 모두 지고 나서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겨울 풍정을 온통 차지하고 매화는 작은 정원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아도 곱지만, 맑고 얕은 연못물에 비스듬히 비친 매화의 성긴 가지의 자태는 고혹 그 자체이다.

그러나 매화의 매력은 자태에만 국한된 것은 결코 아니다. 해지고 달이 떠오를 즈음 공중에 은은히 떠도는 매화 향기는 매화의 또 다른 치명적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매혹적인 매화의 자태와 향기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겨울 하늘을 날던 새도 날다가 매화가 눈에 띄면 내려앉고 싶어서 주변을 흘끔흘끔 보곤 한다. 그리고 흰 나비는 평소 매화 향기가 그윽함을 익히 알고 있는 듯, 매화를 만나자마자 그 황홀함에 빠져 정신이 아득해진다. 사람이 매화와 가까워지는 데 필요한 것은 술도 노래도 아니요 오로지 나지막한 읊조림만 있으면 되니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다.

삭막한 겨울을 달래어 보내고 봄을 맞이할 채비를 하는 꽃이 매화이다. 기개와 지조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고고한 아름다움의 왕자이기도 한 매화를 관상하면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보는 것은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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