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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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0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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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다시 떠오른다
오 희 진 <환경과 생명 지키는 교사모임 회장>

"왜 당신들에게 먹을거리를 주는 우리를 짓밟으려 하는가" (포우하탄 인디언)

시제사를 지냈다. 농촌 들녘은 그 열매와 과실을 다 거둬들인 끝이라 텅 비었다. 올여름 적도 중태평양에서 지속된 엘니뇨현상으로 이미 초겨울 이상 난동을 보이는 아침녘 공기마저 마을의 쓸쓸함을 더하고 있다. 마을을 한 바퀴 돌다가 김장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인사를 나눴다.

무엇인가 예전의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 자꾸만 더했다. 사람, 싱싱한 생명의 왁자함이 거기 빠져 있었다. 어쩌면 여기 다시는 해가 떠오르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거기에 평화의 울림이 겹쳐지며 그런 삶을 갈구하고 있는 이들이 어디서 본적 있는 그런 기시감으로 자꾸만 시야를 흔들어댔다.

그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의 동부해안 버지니아에 상륙한 순례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먼저 온 식민자들과 마찬가지로 '텅 빈 황야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곳에 따라서는 유럽만큼이나 인구가 조밀하고, 문화가 복잡하고, 인간관계가 유럽보다 평등하고, 남자, 여자, 어린이, 자연 사이의 관계가 아마 세계 어느 곳보다도 아름답게 이루어진 공간으로 들어온 것이었다.'(미국민중사) 그곳에는 이미 땅을 '정복'하지 않고 자연과 평화의 공존을 하고 있던 인디언(콜럼버스의 명명에 따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을 앞장서 맞이하고 토종 씨앗을 건네 농사를 도운 이는 바로 인디언들이었다. 미국의 조상이 된 순례자들은 1년 후 그 수확물을 두고 이웃이 된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평화의 시작도 그랬다. 하지만, 성직자와 통치자, 가부장이 지배하며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들로 이루어진 유럽 사회에서 온 이 미국의 조상들은 인디언들과 더 이상 이웃이 될 수 없었다. 사유재산에 뿌리를 둔 독특한 경쟁의 가치체계는 늘 자신들의 땅과 굳건한 통치체제를 수립하고 싶어 했다. 결국 전쟁이 시작되고 당시 청교도의 기도대로 수많은 인디언 영혼들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져 사라져 갔다. 그렇다면 이들보다 먼저 아메리카(정확히 말해 바하마군도)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어떤 일을 벌였을까. 그보다 조금 늦게 젊은 시절 쿠바 정복에도 참여했지만, 이후 죽을 때까지 인디언을 구하려 한 라스카사스신부는 그들의 인종말살의 잔학성을 유일하게 기록했다. '이 섬에는 인디언을 포함해서 6만명이 살고 있다. 결국 1494~1508년까지 300만명 이상이 전쟁과 광산, 노예 노동으로 사라진 것이다. 장차 누가 이 사실을 믿을 것인가 식견 있는 목격자로서 이것을 기록하고 있는 나 자신도 믿기가 어려우니…'

오늘 거의 동시에 추수감사의 제사를 올리는 미국을 돌이키는 것은 '하나뿐인 지구'가 처한 위기 상황에서 세계 최강국으로서 미국이 진정한 공생의 리더십을 성찰하도록 요구하는 세계적 운동에 함께 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 북핵 위기, 한·미 FTA 문제 등 현안들이 더욱 한반도 전민중의 삶과 평화와 직결되어 있기에 그렇다.

신문에는 미군기지확장이전 반대를 통한 반전 평화 운동이 계속되고 있는 평택 대추리의 평화운동회 사진이 실렸다. 미국 지도를 형상화한 설치 미술 조각 안에 주민과 어린이들이 보였다. 이라크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평화 운동에 나선 미국의 '반전 어머니' 신디 시핸이 'peace'라고 쓴 깃발을 '미군' 대신 꽂고 있는 사진도 있다. 해는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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