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에서의 새해 첫날
농가에서의 새해 첫날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1.0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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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사람들이 세월이 빠름을 가장 극적으로 느끼는 시간은 아마도 묵은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 첫 날 사이의 시간일 것이다.

입으로 남은 초를 열부터 외치다 마침내 영에 이르면 이미 해가 바뀌어 버리고 말았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나이에 따라서 그리고 자신의 여러 가지 처지에 따라서 느낌은 다르겠지만 사람들은 새해 아침이면 뭔가 새로운 결심을 하기도 하고 소망을 빌기도 한다.

시골 농가에서 새해를 맞은 당(唐)의 시인 맹호연(孟浩然)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골 농가의 정월 초하루(田家元日)


昨夜斗回北(작야두회배) : 어제 저녁 북두가 북에서 돌다

今朝歲起東(금조세기동) : 오늘 아침은 새해가 동에서 뜬다

我年已强仕(아년이강사) : 내 나이는 이미 마흔살인데

無祿尙憂農(무녹상우농) : 벼슬 없이 아직 농사일 걱정한다

桑野就耕父(상야취경부) : 뽕나무 들판에 농부에게 나가고

荷鋤隨牧童(하서수목동) : 호미를 메고 목동 따라 나선다

田家占氣候(전가점기후) : 농가마다 모두 날씨를 점쳐보고는

共說此年豐(공설차년풍) : 모두가 올해는 풍년이라 말한다




시인이 기거하는 곳은 시골 농가인지라 밤이면 유난히 별이 밝게 보일 수밖에 없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에 유독 시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북두성이었고 이 별이 북쪽으로 돌아 넘어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동편으로 새 해가 솟아올랐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것이다. 시인은 문득 자신의 나이가 벌써 사십살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늦더라도 나이 사십에는 관직에 나가야 되지만 시인은 여전히 농사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렇다고 시인이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농부로 살면서 달관(達觀)의 경지를 보여준다.

들판의 뽕밭에 나가 농부들과 인사를 나누고, 호미 메고 목동을 따라 나서 농삿일을 하고, 올 농사가 어떨지 새해 날씨를 점치기도 하는 것은 모두 시인이 이미 세속적 삶에서 초탈했음을 잘 보여 준다고 할 것이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닥칠 삶은 지금까지보다 어떤 식으로든 나아지기를 소망한다.

새해 아침에 명예와 돈으로 집약되는 출세에 대한 집착은 도리어 삶을 공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됨을 깨닫는다면 그 이후의 삶은 한결 여유로워질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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