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정석
이별의 정석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12.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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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사람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별하게 되는 일을 겪곤 한다. 살아생전에 만날 기약 없는 이별은 가슴 속에 평생 한으로 남게 마련이다.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는 전쟁터에 간다거나, 정치권력과 같은 불가항력적 힘에 의에 강제적으로 이별을 당하는 경우 사람들은 깊은 무력감에 빠지고 처절한 비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보통 이별의 순간에 이성을 잃기가 일쑤이고 허둥지둥 울부짖으며 그 소중한 순간을 보내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비극적인 이별의 순간에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별의 정을 나누어야만 그나마 아쉬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漢)의 시인 이릉(李陵)은 평생의 벗과 헤어지면서 그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에게(與蘇武詩)



攜手上河梁(휴수상하량) : 손잡은 채로 다리에 오른다

遊子暮何之(유자모하지) : 떠나는 이여, 날은 저무는데 어디로 가려는가

徘徊蹊路側(배회혜로측) : 좁은 길에서 방황하니

悢悢不能辭(량량불능사) : 슬퍼서 말을 할 수 없구나

行人難久留(행인난구류) : 길 떠나는 이 오래 머물 수 없나니

各言長相思(각언장상사) : 각자 오래도록 생각하자 말하세

安知非日月(안지비일월) : 어찌 알까, 해와 달이 아니라면

弦望自有時(현망자유시) : 초승달 보름달에도 때가 있는 것을

努力崇明德(노력숭명덕) : 힘써 밝은 덕을 숭상하며

皓首以爲期(호수이위기) : 늙어가기를 기약하세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재회를 기약할 수 없는 이별에 직면해 있다. 한 사람은 떠나가고 한 사람은 남아 있어야 되는 비극적 상황에서 가장 앞서는 감정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일 것이다. 보내는 사람은 보내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떠나는 사람은 떠나기가 너무나 아쉬울 것이다. 아무리 안타깝고 아쉬워도 보내기는 보내야 하고 떠나기는 떠나야 한다. 전날 저녁에 이별의 술자리에서 충분히 석별의 정을 나누었을 터이지만 막상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되자 차마 헤어질 수가 없다. 둘은 서로 손을 잡은 채 놓질 못 하면서도 이별의 장소인 다리로 어쩔 수 없이 갈 수밖에 없다. 해마저 저물어 가는 시각이기에 보내기가 더욱 안타깝다. 차마 떠나가지 못하고 길에서 계속 빙빙 돌며 배회한다거나 슬퍼서 말 한마디 못한다거나 하는 것은 이별의 아쉬움이 얼마나 큰 지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아쉬움이 아무리 크더라도 끝내는 헤어져 떠나야 한다.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을 맹세하기도 하고 달이 찰 때가 있으면 기울 때가 있듯 헤어질 때가 있으면 만날 때도 있다고 서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그리고 각자 훌륭하게 살도록 노력하자고 약속을 하기도 한다. 모두가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언사들이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한다면 울고불고하며 정신없이 헤어질 게 아니다. 최대한 이별의 정을 간곡히 표시하고 이별의 말도 정중히 할 줄 아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이별이 이별로 끝나지 않고 훗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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