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더듬이 선생님
말더듬이 선생님
  • 김주희<청주 수곡중 교사>
  • 승인 2015.12.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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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김주희

독서의 중요성은 계속 강조되고 있으나, 막상 책을 읽는 아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학교 도서관에 와서 책에 집중하는 중학생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생을 만난 듯 반갑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는가를 살펴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판타지나 오락성이 짙은 만화를 편독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떻게 양서의 세계로 이끌어야 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이 든다.

얼마 전 독서교육 연수에서 이 고민에 대해 공감이 가는 조언을 들었다. 그 방법은 ‘교사가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은 선생님이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게 마련이다. 그 선생님이 항상 책과 가까이 있다면 아이들도 당연 책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느린듯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말더듬이 선생님’의 무라우치 선생님과 학생들처럼 말이다.

도서 ‘말더듬이 선생님’(시게마츠 기요시 지음)에 등장하는 무라우치 선생님은 학교를 떠돌아 다니는 임시교사다. 국어 선생님이지만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말을 더듬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교실 칠판은 동서남북 어느 쪽에 있을까요?’

명문 중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노자와에게 무라우치 선생님이 던진 질문이다. 이미 엘리트 코스의 트랙에 들어선 아이들 대부분이 그 길을 따라가지만 시노자와처럼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학교에 염증을 느끼는 시노자와는 편히 갈 수 있는 명문고 진학을 거부하고 공립학교 진학을 고집한다. 시노자와의 행동은 부모와 학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일탈이었지만 무라우치 선생님은 시노자와를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선생님은 상상해보라고 했다. 아침 10시. 우리나라의 모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교실에서, 수백 만 명의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서, 칠판을 본다. 서쪽을 향해서, 모두 왼쪽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상상했다. 처음에는 웃었고, 그리고 곧바로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향창을 유지하면서 오른손으로 필기를 할 때 그림자 때문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면 칠판을 서쪽으로 배치해야 한다. ‘그러면 왼손잡이한테 불공평하잖아요?’ 무라우치 선생님이 시노자와에게 낸 과제는 질문의 답을 찾는 것보다는 이런 불공정한 부분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 문화 속에서 시노자와는 외로움과 혼란을 느끼지만 무라우치 선생님은 시노자와의 생각을 지지해준다.

작가가 무라우치 선생님을 통해 꺼내놓은 것은 학교 생활에서 상처를 입은 학생들 이야기이다. 집단 괴롭힘으로 인해 자살 시도를 한 후 학교를 떠난 급우의 책상을 치워버리고 죄의식을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하는 아이들의 비겁함을 꾸짖는 이야기, 피해자의 과실로 일어난 교통사고지만 사망한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가 11년 동안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도 나온다.

책을 읽으며 ‘용기’와 ‘책임’이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나의 잘못, 우리의 잘못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 책임을 진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이제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서 소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풍토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아이가 부는 리코더를 소리가 나지 않게 막은 후 참가한 합주 대회 우승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멋진 합주만큼 그 아이를 모욕하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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