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밤(시 읽는 밤)
시밤(시 읽는 밤)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 승인 2015.11.1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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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 하은아

‘시’는 그야말로 ‘멋’의 대명사이다. 시를 낭송하고 읽는 사람은 뭔가 분위기 있어 보인다.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멋진 남자 주인공은 시를 읽곤 한다. 이처럼 시는 오묘한 무언가가 있어서 멋과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이런 시를 자주 만나고 싶다. 짧은 문구와 한 편 한 편 떼어 읽기 좋으니 바쁜 일상에 읽을거리로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시집이다. 시에 대한 선입견은 완고한 성과 같아서 시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시는 어렵게만 생각되기 때문이다.

시를 읽고 있으면 빨간 펜을 들어 밑줄을 치고 동그라미를 그려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단어 속에 내포하고 있는 뜻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답을 찾듯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겨난다.

시는 꼭 해답을 꽁꽁 숨겨놓은 문제 같다. 시를 이렇게 배운 탓이다. 김동명의 시 ‘내 마음은 호수요’를 읽으면 반사적으로 은유법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읽으면 님은 조국 또는 부처님이라고 생각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더 손에 잡기 힘들다. 멋지게 차 한 잔 마시며 시 한 수 읊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 않다. 시를 읽기 위해서 나는 시를 시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생각을 바꿔주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만 했다. 첫 번째로 쉬우면서도 언어적 유희가 백미인 시집을 골라 읽기로 했다. 그래야 단어 몇 개로 마음을 움직이는 시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핫’한 시인을 찾으니 ‘하상욱’이 나왔다. SNS에서 스치듯이 한두 줄의 문구로 무릎을 치게 만들었던 시인이었다. 그럼에도 관심 밖이었던 그 사람의 시집을 낙엽 향기 가득한 가을날에 읽기 시작했다. 책 제목도 그럴싸하다. ‘시밤. 시 읽는 밤’(하상욱 저·예담·2014)이란다. 어떤 언어유희도 있는 것 같고 시 읽는 밤이라니 어쩐지 로맨틱하기도 하다.

그의 이번 시집에는 달콤한 말들이 들어 있다. 내 옆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던 그런 말들이 쓰여 있고 조심스레 시집을 전해주고 싶은 그런 말들이 들어 있다. 어렵지도 않다. 생각을 많이 할 필요도 없다. 쓰여진 그대로 우린 읽고 느끼고 생각하면 된다.

두세 줄의 문장이 주는 따듯함에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에도 온기를 넣어주고 싶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쌀쌀함이 진해지는 계절이다. 어둠은 빨리 찾아와 늦게 돌아간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어주면서 추억을 이야기하고 달콤한 내일을 기대하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자. 입 밖으로 꺼내기 쑥스러웠던 이런 말도 하면서. “정말 니 생각만 하는구나. 나는.”(하상욱 시집 ‘시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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