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공기
캄보디아의 공기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5.11.0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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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캄보디아 입국 때 일화를 소개하며 우리나라의 과거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독재의 공기’를 함께 느껴보자.

캄보디아에서는 입국할 때 1달러를 더 내면 바로 통과시켜준다. 이른바 급행료다. 우리에게도 있었지만 사라진 지 오래다. 서생으로서 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확인하고 싶었다.

비자를 내자 1달러를 달라고 말한다. 없다고 하자 여직원이 웃는 낯으로 서류상 부족한 점을 써 오란다. 다른 입국자들이 1달러를 끼워 넣자 바로바로 맨 끝 대기자 줄에 선다. 칸을 채워 가자 대기자 줄에 가서 기다리라고 말은 하면서도, 여권을 그쪽으로 넘기지 않는 것이 보인다. 그래도 대기자 줄에 가서 섰더니 한참을 지나도 여권이 나오지 않는다. 나보다 늦게 온 다른 사람들이 여권을 받고 나가는 것을 10여 분 바라보다가 여직원에게 다시 가서 물었더니 바로 나올 거란다. 다시 그 줄로 갔더니 슬그머니 여권을 준다.

그리고는 입국심사대에 섰다. 그 줄에 있던 3개국 유럽 여학생들의 상황을 들었다. 셋 다 사진이 없다고 2달러씩 더 요구하더라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으라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면 된다고 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스캔하는 장비도 없었다. 벌금 개념으로 그 친구들은 생각하던데, 내가 그 돈은 세관이 사적으로 먹는 것 같다고 하자 놀란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옆줄은 지문을 찍지도 않고 입국허가를 내주는 데 나는 심사대 앞에서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보고, 그리고는 열 손가락 모두 지문을 받는다. 무섭기 시작한다. 아까는 호기였지만 이제부터는 생존이다.

나도 그런 시절을 살아보았다. 내 앞에 서 있던 그 사람은 무섭지 않았지만, 그 뒤에 펼쳐져 있는 권력이라는 긴 그림자를 느끼고는 ‘깨갱’ 해본 사람이다. 교통경찰에게 돈을 집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심지어는 거슬러주기까지 했다. 오천 원권이 없으니 만 원권을 내면서 오천 원을 되돌려받는 것이다. 차량별 뇌물액도 달랐다. 거꾸로 힘있는 번호는 무조건 통과만 아니라 인사까지 했다. 그러나 올림픽 무렵부터인가 갑자기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경찰 개인에게 주느니 차라리 나라에 내겠다는 태도가 보편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는 경찰이 돈을 받지 않겠다는 태도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 교통경찰이 돈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한다.

캄보디아 세관은 “지문이 의무냐?”라는 질문에 “모두가 하는 것이 안 보이냐”고 화를 내듯 답했지만 내 눈에는 그냥 통과하는 사람도, 엄지만 하는 사람도 보였다. 한국인도, 유럽 아가씨들도 대강 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돌아가 본 1980년대였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경찰서 폭력은 기본이었다. 설 때리면 나중에 문제 생긴다고 제대로 때리던 시절이었다. 맞아 터져 푸른 엉덩이를 내 눈으로 봤으니,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게다가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즈(루즈처럼 빨간 크메르)가 어마어마한 학살을 한 동네 아닌가. 잠시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서 경찰에게 소지품을 검사받던 때, 검문소에서 군경이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라고 들이닥치던 때, 캠퍼스 안에서 경찰이 무전기를 신문지에 싸서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끌려간 친구도 떠올랐다.

수업시간에 간혹 ‘독재의 공기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는 말을 한다. 그것은 동료와도 말조심해야 했던, 민주사회에 사는 젊은이들이 모르는 살벌한 분위기(atmosphere)임에 틀림없다. 오랜만에 과거로의 무거운 여행이었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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