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 속 친구를 찾아서
가을 산 속 친구를 찾아서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11.0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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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멀리 있는 가족이 그립고, 고향이 그립고, 친구가 그립다. 대부분은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그치지만, 간혹 그리운 대상을 찾아 나서는 때도 있다.

문득 생각이 나서 나선 길이라, 상대편에게 알리고 가는 일은 잘 없다. 어떻게 보면 아무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찾아온 사람이 더 반가울 수도 있다.

때로는 찾는 사람이 그 자리에 없어 만나지 못하는 때도 있다. 사람은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리움의 병은 어느 정도 치유될 수 있다. 당(唐)의 시인 위응물(韋應物)도 가을날 그리운 친구를 찾아 무작정 산속으로 떠났다.



전초산 속 도사에게(寄全椒山中道士)


今朝郡齋(금조군재냉) : 오늘 아침, 관사는 차가워

忽念山中客(홀념산중객) : 문득 산중의 사람이 생각난다

澗底束荊薪(간저속형신) : 골짜기 물 아래서 땔나무 묶어

歸來煮白石(귀래자백석) : 돌아가 흰 돌을 삶고 있겠지.

欲持一瓢酒(욕지일표주) : 술 한 표주박 가지고 가서

遠慰風雨夕(원위풍우석) : 멀리서 바람 불고 비 오는 밤을 위로하려 하네

落葉滿空山(락엽만공산) : 낙엽은 빈 산에 가득한데

何處尋行迹(하처심행적) : 어디에서 발자취를 찾을 것인가




어느 가을날 아침, 시인은 임지(任地)의 관사(官舍)에 머물고 있었다. 이날따라 날씨가 무척 차가운 느낌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가을의 골짜기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세월이 벌써 이렇게 많이 흘렀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시인의 뇌리에 산속에서 은거하고 있는 친구가 갑자기 스쳐 지나갔다. 그리움의 감정과 궁금증이 발동하자, 시인은 곧장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곳을 향해 길을 나섰다.

가면서 시인은 지금 친구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아마도 골짜기 물 아래로 내려가 땔나무를 묶어서는 거소(居所)로 돌아와 흰 돌을 삶고 있을 것만 같았다.

땔나무를 묶고, 흰 돌을 삶고 하는 행위는 겨울을 목전에 두고 세속을 떠나 사는 은자들이 취하는 것들이고, 이는 무념무상과 무욕의 삶의 자세를 상징한다. 흰 돌을 삶아서 양식으로 삶는 것은 예전 백석(白石)이라는 선인(仙人)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시인은 친구를 빨리 보고 싶지만, 사정은 여의치가 못하다. 술 한 병 들고 가서 서로 나누어 마시며 깊은 산 속에서 비바람 치는 저녁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인적이라곤 전혀 없는 텅 빈 산에 낙엽이 가득 쌓여 있으니 도무지 친구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을날 갑자기 날씨가 차가워지면, 문득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이때 망설임 없이 그리운 사람을 찾아 무작정 나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 속에서 이런 일은 발생하기 어렵다. 이런저런 일로 세상사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발치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세상을 꼭 그렇게 얽매여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끔은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무작정 그리운 사람을 찾아 떠날 수 있어야, 그 삶은 멋스럽고 풍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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