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술 한 잔
가을날 술 한 잔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10.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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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바쁘고 판에 박힌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사람들은 삶의 참된 모습에 대한 의문을 도외시하기 쉽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계제를 맞곤 하는데 아마도 가을날 한적한 정취에 술을 한잔 기울이다 보면 그러할 것이다.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가을 어느 날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자연을 관조하며 삶의 참된 모습이 어떠한지를 그려내고 있다.



술을 마시며(飮酒)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 변두리에 초가집 지어 사니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 날 찾는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 없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 묻노리, 어찌 이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 마음이 욕심에서 멀어지니, 사는 곳도 구석지네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꽃을 따며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 멀리 남산을 바라본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 산기운은 저녁 햇빛에 더욱 아름답고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 나는 새들 서로 더불어 둥지로 돌아오네

此間有眞意(차간유진의) : 이 사이에 참다운 삶의 뜻이 있으니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 말로 표현하려 해도 할 말을 잊었네




시인의 집은 속세를 떠나 깊은 산 속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보통 마을로부터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한쪽 귀퉁이에 있었다. 그리고 집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띠 풀을 이리저리 얽어매어 만든 초가집이었다. 외진 데 있는데다 허름하기까지 하니 사람들이 찾아올 리가 없다.

부자와 권세가를 찾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세태가 아니던가? 시인은 돈 없고 힘없는 자신의 처지를 결코 슬퍼하거나 한탄하지 않는다. 한 때 팽택의 태수(彭澤令) 자리에 있었고, 글줄깨나 읽은 시인에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이웃 사람이 그 이유를 물어보는 일이 있었다. 이에 시인은 마음이 멀어지니까 땅은 저절로 외지게 되더라고 대답하였다. 시인을 찾아와 본들 세속적으로 실익이 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집이 속세를 떠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교유 대신 시인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서 유유자적한 삶을 구가하고자 하였다. 시인은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을 따 들고 멀리 남산을 바라보았다. 하루해가 저물면서 산 기운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날아가는 새들은 짝지어 산속 둥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인은 자연의 섭리대로 움직이는 이러한 자연의 모습 속에 참된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것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방도는 없었다.

사람마다 참된 삶에 대한 생각은 다 다를 것이다. 보통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상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이 참된 삶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참된 삶은 도리어 세속적 가치와 무관한 곳에서 찾아지기가 쉽다.

사람들은 부와 명예, 권력과 같은 세속적 가치에 매몰되어 그것이 삶의 전부인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참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참된 삶의 모습은 도리어 자연 속에 있다. 술 한 잔 들고 가을 국화꽃을 감상하고, 저녁이 되자 둥지를 찾아가는 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삶의 참된 모습이 어렴풋이나마 그려질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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