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危機)
위기(危機)
  •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
  • 승인 2015.10.1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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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리>

2015년 한국영화는 배우 이경영이 출연하는 영화와 출연하지 않는 영화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암살’, ‘서부전선’, ‘허삼관’,‘미생’‘뷰티인사이드’ 등등. 최근 출연작만 열거해도 숨이 가쁠 지경이다. 2002년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으로 그는 윤리적인 위기와 마주하게 되었고 9년 동안 내일이 없는 거 같은 시간 속에 대인기피증으로 숨어 지냈다고 한다.

‘삶에 있어 위기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 되었고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규명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는 지금 현재도 우리는 위기를 경험하고 있으며 회피하려고 하거나 또는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이며 교육학자인 볼노(O.F.Bollnow)는 이 위기의 개념을 그의 저서 ‘실존철학과 교육학’에서 처음으로 학문적으로 규명하기 시작했다.

심리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신체와 정신은 그다지 균형 잡히게 발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연속적으로 발달하지도 않는다고 여겨왔다.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삶의 단속적(斷續的) 성격은 ‘위기’와 관련지을 수 있다. 독일어로 위기(Krise)라는 말은 희랍어 krinein에서 온 것으로 가르다, 가려내다. 선택하다, 판단하다, 결정하다 등을 의미한다. 또한 산스크리트어에서는 위기가 ‘정화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어원 연구로부터 위기는 첫째, 정화를 의미하는데 인간은 이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자신의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하고 새로운 순수함에서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위기는 결단을 의미하는데 인간은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위기상황에 놓이는데 두 개의 길을 구별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기는 정화와 결단이라는 의미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 위기를 통해 인간은 정화되어 더 이상 이전의 상태가 아닌 새로운 상태로 변화되며, 위기에 직면했을 때 결단을 통해 이전의 상태가 아닌 새로운 상태를 선택한다. 철학자 플뤼게(H.Plugge)는 위기는 연속적인 삶의 경과를 단절시키고 갑작스럽게 나타나 반드시 사라져 버리는 비연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위기가 나타나 사라질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볼노는 인간은 행위의 자유와 상황의 속박 사이에서 자신의 의지로 결단을 내리기도 하고 또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도 결단을 내린다고 한다. 위기는 삶의 정화를 의미하며 고통스럽고 끔직한 체험일 수 있다.

위기는 우연히 외부로부터 들어와 삶을 중단시키고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속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삶에서 의미 있고 필연적인 기능일 수 있다. 이러한 위기의 기능에 대해 사람들은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위기의 기능은 형이상학적인 가정 아래에서 단지 사람들의 실존적 체험을 통해 이야기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파렴치한으로 선고를 받고 9년 동안 거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한 배우 이경영은 어느 인터뷰에서 2002년의 위기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많이 부드럽고 세상을 좀 더 옳은 방향으로 보려고 애썼을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아마 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살았을 가능성이 크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위기로 인해 ‘영화의 숲’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극한에 다다르면 그 길이 보물을 숨긴 막장이 되며, 더 갈 수 없을 때까지 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길, 삶 속엔 늘 그 길이 있다.

볼노는 이야기 한다. 삶의 위기는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인위적으로 약화시키거나 제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위기는 반드시 사라진다.’라고.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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