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한화의 가을야구
마리한화의 가을야구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0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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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김성근 감독의 한화이글스가 5위에 진입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올 시즌을 마감했다. ‘마리한화’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강한 중독성과 열정을 이끌어 냈으나 열망하던 포스트 시즌 진출이 무산돼 더 이상 가을야구를 펼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한화이글스의 투혼은 그 시작부터 남다른 의미가 있다.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무려 7년 동안이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음은 물론 5차례나 최하위에 머무는 수모를 당해왔다. 당연히 팬들의 외면을 받았고, 한화야구는 다른 구단의 동네북으로 여겨질 만큼 존재감마저 상실한 듯했다.

충청도를 연고지로 하는 한화이글스는 그러나 팬들의 성화에 힘을 얻어 끝내 좌절하지 않았다.

프로야구는 자본의 스포츠다.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돈(연봉)’으로 우수한 선수를 끌어 모아 확보한 경기력으로 승부한다.

이기는 경기에 팬들은 열광하고 그 인기에 힘입어 직접적인 수입을 올리거나 구단이 소속된 재벌 그룹에 대한 선호도를 극대화하는 간접효과를 거두게 된다.

때문에 프로야구단을 거느리고 있는 재벌그룹들은 잘하는 선수와 최고의 감독을 영입하려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과정은 그러나 소비자인 팬들의 의견은 반영될 여지가 거의 없다.

한화는, 엄밀히 말하면 한화이글스의 팬들은 달랐다. 다섯 번의 꼴찌에도 좌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1인 시위 등 극단적이고 적극적인 표현방식을 펼치면서 한화이글스의 부활을 간절하게 소망했다.

그저 단순한 구단의 노력을 촉구하는 간절함을 뛰어 넘어 ‘야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을 꼭 집어 영입 촉구를 하는 등 확고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한화이글스 낡은 다이너마이트의 도화선에 새로운 불을 지폈다.

지금 세상은 상명하복의 권위주의적 체계로 전락하고 있다. 족벌중심 1인 지배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재벌 중심 스포츠산업의 경우 가장 아랫단계인 소비자의 의사가 상품에 반영되는 일은 거의 없다. 자본뿐만 아니라 관료사회는 물론 사적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번진 의사소통의 체계적 왜곡 현상을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라고 부른다.

기실 프로야구의 출범이 정치적 무관심을 겨냥한 군부독재시대의 꼼수였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으니, 이런 경직성은 새삼 따질 일도 아닐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 특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를 훨씬 넘어 다포세대의 헬조선에서, 가장 나약한 20대 여성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프로야구에서 한화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의미심장하다.

한화가 졌다. 5강에 합류하지 못해 가을 야구를 하지 못하는 아쉬움의 눈물이 있으나 우리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그 시작이 아래에서 솟구쳐 치오른 것이고, 스프링 캠프에서의 피땀이 여전히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열매가 그득한 가을 들판의 수고로움 대신 푸른 잎 싱싱한 벼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춤추는 여름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다시 새날을 믿는다. 은근과 끈기의 충청도 뚝심을 닮아 언젠가는 크게 터질 다이너마이트가 될 우리 모두를 크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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