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말
월남말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5.09.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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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베트남에는 한국인들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가 있는 데도 그 배경이 설명되지 않아 단편적으로 언어와 철학을 소개한다. 관광지에서라도 도움받았으면 한다.

월남(越南) 곧 베트남(Vietnam)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엣남’, 좀 더 정확히는 ‘뷋남’ 곧 ‘웻남’의 일본식 발음일 것이다. 우리말의 ‘ㄹ’ 받침은 한자 고어에서의 ‘t’ 발음이니까(워터water와 워러를 생각하면 쉽다), 우리말 발음의 원칙이 오히려 월남의 한자음과 통한다. 그러니까 월남도 우리나라처럼 한자문화권이다. 베트남도 우리처럼 일찍부터 중국문화를 받아들였다. 국호도 우리가 한자로 한국(韓國)이라고 쓰고 읽는 것과 같다. 조선이건, 고려건 모두 한자와 그 발음을 중국발음의 원칙에 따랐다.

이를테면 하노이국립대학을 예로 들어보자. 하노이는 하내(河內)의 월남식 발음이다. 우리가 강외면(江外面), 강내면(江內面)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표기할까? 월남은 형용하는 것이 뒤로 간다. 악센트 및 여러 기호를 빼고 스펠링만 옮기면 ‘DAI HOC QUOC GIA HANOI’로 표기하는데 말 그대로 옮기면 ‘대학국가하내’다. 위의 스펠링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발음기호인데 중요한 것은 한자발음이 우리식과 많이 닮았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하노이 세종학당도 그 대학에 있다. 한국어 및 한국문화학부가 건물을 함께 쓴다. 한국은 ‘HAN QUOC’이라고 쓰고 읽는다.

진도 좀 나가보자. ‘HO-CHI-MINH’은 호치민(胡志明)인 것은 다 아는데 그 앞에 붙은 ‘CHU TICH’은 뭘까? 호지명의 호칭인 주석(主席)의 월남식 발음이다. 우리가 잘 아는 ‘틱낫한’ 스님의 ‘틱’도 스님을 드러내는 ‘석’(釋)의 월남식 발음인 것과 같다. 틱낫한 스님은 석일행(一行) 스님이다. 행동을 중요시하는 위빠사나 불교의 특징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좀 더 어려운 것에 도전해보자. ‘GONG HUA XA HOI CHU NGHIA VIET NAM’는 무엇일까? ‘공화사회주의월남’이다. 우리식으로 ‘월남사회주의공화’의 뜻이다. 우리의 초성 ‘ㅇ’ 발음을 강조하기 위해 ‘NG’로 표기한 것에 주의하자. 베트남공산당은 ‘당공산월남’(DANG CONG SAN VIET NAM)이다. 이제 여러분은 관광지에서 혹 ‘CHU YI’라는 표시가 있으면 ‘주의’(注意)라는 한자임을 알아차릴 수 있으실 것이다. 우리식대로 일단 읽으면서 관용어가 뒤로 간다는 것만 염두에 두면 된다. 나? 월남말을 배워본 적도 없지만 그냥 ‘CHU YI’ 깊게 보았다.

그렇다면 월남은 중국과 친한가? 그렇지 않다. 현대사에서도 좋지 않았지만 삼국지에도 나오듯이 ‘칠종칠금’(七縱七擒:중국에 스스로 굴복하게끔 일곱 번 잡았다 일곱 번 놓아준)의 굴욕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다.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은 역사적인 과제였던 것이다. 프랑스는 어땠는가? 오늘날도 바게트를 즐길 정도로 프랑스 문화의 영향은 크지만 결국 독립을 이루어낸다. 게다가 미국과는 어땠는가? 미국이 유일하게 진 나라가 월남 아닌가? 통일 후 캄보디아는 함부로 덤볐다가 수도가 함락되는 수모를 겪었다. 베트남은 중국도, 프랑스도, 미국도, 캄보디아도 물리쳤고 덕분에 어떤 나라가 침공해오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이겨본 놈이 이길 줄 안다.

언어와 문화도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독자적인 길을 가고자 했고 가톨릭이 현재에도 적지 않지만 프랑스로부터 자유를 얻어냈고 미국이 자존심을 걸고 내전에 개입했지만 결국 이겨냈다.

그들은 유교에도 충실했다. 과거시험도 봤고, 우리 국자감 같은 곳에서 사서(四書)도 가르쳤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인이 아닌 월남인이었다. 우리처럼 말이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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