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욕칠정과 인사이드아웃
오욕칠정과 인사이드아웃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5.08.2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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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성찰은 서양보다는 동양이 깊고 오래된 듯하다. 이러한 생각은 순전히 내 취향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그 취향을 좌우하는 요소 가운데 태어나서 살아가는 장소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거기에 동시대를 함께 생활하는 무리와의 소통과 교류에서 체화되는 문화적 유사성이 차이를 구별하는 몫이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아웃>을 통해 얻은 작지 않은 충격을 말하기에 앞서 사설이 길어진 듯 한데, 그만큼 <인사이드아웃>이 흥미로웠다는 뜻이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은 적어도 내가 알기에는 인간의 속살, 즉 내부의 감정을 본격적이고 전면적으로 들여다보기를 시도한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의 이름으로 번역된 다섯 가지 인간의 감정이 캐릭터로 등장하면서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의 콧잔등마저 시큼하게 만드는 미국 영화의 진화는 놀랍다.

기쁨만이 지속되는 세상을 꿈꾸는 건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욕망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인간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데다, 슬픔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면서 성찰과 성숙, 그리고 차분함과 배려를 쌓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은 그래서 지극히 철학적이다.

글 첫머리에 언급했듯이 서양철학의 경우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로 대표되는 그리스 철학 이후 한참동안 ‘인간’에 대한 본질적 접근은 쉽지 않았다. 긴 세월을 종교철학이 주류를 이루는 바람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이의 진실이 푸념으로 비하되는 시기를 거친 것 아닌가.

그런 서양의 철학사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시각과 인식의 변화를 촉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종교개혁이고, 그 종교개혁의 숨은 공로자는 구덴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다.

그러니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을 탄생시킨 청주의 인류사적 가치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동양철학의 경우 불교를 중심으로 일찌감치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愛,惡.慾)의 칠정과 더불어 수면욕, 식욕, 색욕, 명예욕, 재물욕의 다섯 가지 욕망을 거론하며 경계와 절제, 그리고 감정을 비롯한 인간의 본성에 천착했음이 갸륵할 따름이다.

인류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이라는 위대한 명성이 한반도에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어디 그 뿐인가. 세계적인 언어학자들로 부터 역사상 가장 우수한 문자로 손꼽히고 있는 ‘한글’의 창제에 이르면 오욕칠정을 비롯한 인간의 본성을 깊이 있게 연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는 확신에 흔들림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러 면에서 늑장을 부리거나 게으르다. 일개 애니메이션에 불과한 <인사이드아웃> 한 편을 보고 왠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의 본성을 외면하고 ‘사람’의 가치와 존엄성을 무시할 때 헐리웃은 Inside out, 말 그대로 인간 뇌 속의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세상을 ‘뒤집’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물며 비방과 선전, 선동을 통해 서로 상대방을 자극해서 전쟁의 위기와 공포를 만드는 일이 인간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제발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9월을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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