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의 용서와 화해, 그리고 나눔과 사랑
11년만의 용서와 화해, 그리고 나눔과 사랑
  • 김명철 <청주서경중학교 교감>
  • 승인 2015.08.19 17: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서경중학교 교감>

만 11년 만에 가슴 아픈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학교에 나가셨네요. 오후에 잠시 학교로 찾아 봬도 될까요?”

2004년 4월 10일 정말 기억하기도 싫은 그날! 오전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전화가 왔다.

“K가 국군통합병원 중환자실에 있는데, 의식 불명이라”는 제자의 전화였다. 나는 급하게 조퇴를 했고, 분당의 국군통합병원으로 달려갔다. 분명히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미국 동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야 할 녀석이 어떤 사연으로 군대에 갔으며, 또 왜 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지.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고 나는 병원 대기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병실 대기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K군 어머니로부터 멱살을 잡히고 말았다.

“내 아들 살려내라”는 소리를 지르면서 울부짖는 k군 어머니의 온갖 욕설을 다 들어야만 했다. K군의 아버지와 친구들에 의해 가까스로 진정을 시키고 나는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게 되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K가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미국의 대학에 진학했는데, 담임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 귀국해서 해병대로 입대했고, 훈련 과정에서 폐렴을 앓게 되면서 병이 악화돼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지금 중환자실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4년 전 K군이 서울의 모 대학에 입학하고, 2달 후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5살까지 미국에서 살았는데, 만 19세가 되면 국적을 정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하러 담임인 내게 찾아온 것이다. 나는 평소에 늘 정체성 교육과 역사의식을 강조한 터라 미국 국적을 취득한 후에 K군이 한국과 미국에서 당당하게 멋지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국인으로서의 병역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당시 원정 출산으로 사회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던 터라 당당하게 군대에 가도록 지도했던 것이다. K군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조국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의 대학을 휴학한 후 군대에 입대했다는 것이다.

쓰러진 지 7일 만에 K군은 결국 천국으로 갔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나는 매년 현충일이 되면 K군을 만나기 위해 현충원으로 참배를 갔다. K군이 고3 때 봉사활동을 다니던 사회복지 시설의 7공주 아이들과 함께 매년 그렇게 참배를 했었다.

그런데 11년이 지나서 어머니께서 학교로 찾아오겠다는 전화가 온 것이다. 무슨 일일까?

학교로 찾아와서 무슨 행패(?)를 또 부리시려고 그럴까? 온갖 상상을 다하면서 초조하게 K군의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런데 교무실에 들어오시자마자 펑펑 우시면서 선생님을 찾아오기까지 11년의 세월이 걸렸노라고 선생님을 용서하고 이해하는 데 10년이 걸렸노라고,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우는 어머니의 모습에 아들을 가슴에 묻은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얼마나 힘드셨으며, 지금도 얼마나 힘드실까?

그런데 K군의 어머니가 지금 나를 찾아온 이유는 k군이 죽은 뒤 국가에서 나오는 연금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 두었고 이 돈을 의미 있는 곳에 쓰려고 하는데, 의논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5000만원이 넘는 돈을 아들의 이름으로 좋은 곳에 쓰고 싶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그 돈을 K군의 모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하자는 의견을 드렸고, 즉석에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K의 마지막 모교인 금천고등학교로 가서 교장선생님 앞에서 학교 발전 기금(장학금)으로 기부하게 되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K군의 어머니가 이 일을 시작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해서 더 많은 금액의 장학금을 기부하고 싶다는 의지도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년 사회 시설의 아이들이 K군의 묘소에 참배한다는 말을 듣고 직접 시설로 찾아가서 수십만원의 후원금을 즉석에서 기부하고, 매월 후원금을 후원하는 약정서도 작성하였다.

11년 만의 화해와 용서는 나눔과 베풂으로 승화되어 더 큰 사랑으로, 이 세상을 밝히는 천사의 빛으로 우리를 환하게 비춘다.

“K야 너는 분명히 천사로 잠시 우리 곁에 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 것 맞지? 사랑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