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잊기
무더위 잊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7.2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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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여름의 무더위를 잊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이나 어여쁜 여인의 자태에 흠뻑 빠지는 것 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아름답고 어여쁜 모습에 넋을 잃고 나면, 제아무리 사나운 삼복더위라 할지라도 아예 느껴지기조차 않을 테니 말이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 白)으로 하여금 여름 무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 자야오가 여름 노래(子夜吳歌夏歌)

鏡湖三百里(경호삼백리) : 거울같이 맑은 호수 삼백리
菡萏發荷花(함담발하화) : 연봉 오리에서 연꽃이 피는구나!
五月西施採(오월서시채) : 오월에 서시가 연 밥을 따면
人看隘若耶(인간애약야) : 사람들이 구경하느라 몰려들어 약야계가 비좁았다네
回舟不待月(회주불대월) : 달이 채 뜨지도 않았는데 배를 돌려
歸去越王家(귀거월왕가) : 월나라 왕궁으로 돌아갔다네

※ 먼저 시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여름 풍광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우면서도 시원하기 그지없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여름철 무더위를 식혀주는 풍광으로 호수만한 것도 드물 것이다. 시원함은 기본이고, 여기에 거울의 맑음과 삼백 리라는 너비를 더했다면, 그 느낌이야말로 환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원하고 맑은 물이 삼백리 만큼 널찍하게 펼쳐진 것만으론 다소 밋밋할 수 있어서였을까? 여름의 진객인 연꽃이 거들고 나섰다. 녹색의 넓죽한 잎새 위로 고개를 내민 꽃봉오리에서 하얗게 피어난 연꽃의 자태는 보는 이의 넋을 뺏기에 충분하였다. 맑고 넓은 호수와 녹색과 백색이 기막히게 어우러진 연꽃의 조합으로 환상의 여름 풍광은 완성되었다. 이러한 여름의 환상적 풍광에 아리따운 여인이 더해진다면 이보다 더한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어찌 세상에 또 있겠는가? 시인은 월(越)나라 미녀 서시(西施)를 끌어들여 환상적 여름 풍광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음력 오월 여름날 서시(西施)가 월(越)나라 궁궐 근처에 있는 약야계(若耶溪)에 연 밥을 따러 나오곤 했는데, 그 아리따운 모습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약야계(若耶溪)가 비좁을 지경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녀는 달이 채 뜨기도 전에 서둘러 배를 돌려서 궁궐로 돌아가 버렸으니, 구경 나온 사람들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호수와 연꽃, 여기에 미인을 결합시켜 환상적인 여름 장면을 연출한 시인의 솜씨가 참으로 탁월하다.

아무리 견디기 어려운 여름 더위라 하더라도, 푹 빠질 만한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면, 사람들은 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장면을 과연 만날 수 있는가일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장면을 만난다면 야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주변의 평범한 장면들에 각자만의 상상력을 동원해 환상적인 장면을 꾸밀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환상적인 장면이 머리에 떠오르면, 여름 더위는 저절로 물러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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