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역사 - 영화 <암살>,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성
영화와 역사 - 영화 <암살>,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성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5.07.26 18: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대부분 장엄하다. 영화감독들은 관객들의 감동과 여운의 크기와 길이를 최대한 확대하기 위해 그 장면에 특히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나면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면서 관객들은 극장을 나와야 한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온갖 애를 쓴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있겠으나, 나는 영화 <암살>을 보고 엔딩 크래딧이 다 끝난 후에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왜 이 영화 제목이 ‘암살’이어야 하는 가?

‘암살’이라는 단어는 ‘몰래 사람을 죽임’으로 뜻풀이가 되어 있다.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원한에 대한 응전에서 비롯된 비정규전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저격은 역사의 도전과 응전에 해당함이 마땅하다.

영화 <암살>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의 식민지와 그 이후의 해방공간이고, 장소적 배경은 만주 벌판과 상해임시정부로 상징된다. 그리고 친일파에 의해 장악된 주권 상실과 개인적 야망의 공간 경성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흔들리지 않는 조국 독립의 신념과 함께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기회주의와 체념하거나 좌절된 테러리즘이 있다.

아무래도 ‘암살’이라는 표제어는 지극히 폭력적이거나 반 인권적이고, 또 비평화적이며 긍정보다는 부정의 상징성이 더 크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극악하고 잔인한 침탈에 대해 비분강개, 분연히 일어나 응징함으로써 조국 독립의 간절한 의지를 불태우는 숭고함을 ‘암살’로 삼아야 함은 결국 지금도 모순이 지워지지 않고 있는 모습과 닮아 있다.

독립 염원의 순수성과 왜곡된 자본 탐닉 또는 순수를 파멸시키는 앞잡이의 노릇에 이르기까지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반 없다는 자괴감은 그래서 이 영화 <암살>을 비장한 비극으로 여기게 되는 고육지책이다.

영화가 픽션(Fiction. 허구)이라고? 물론 당연히 꾸며낸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영화’라는 단어가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이라는 사전적 해석을 염두에 두면 상황은 다르다.

더구나 영화 <암살>이 끝내 좌절된 민족 상징의 실존 인물 백범 김구 선생이 등장함은 물론, 다큐 영상을 동원해 역사적 사실성을 극대화했다는 점에 이르면 그 상징의 표상은 남다르다.

영화 <암살>은 역대 한국 영화 개봉 흥행 2위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관객들 가운데 과연 영화에서 언급되는 반민특위의 존재가치이거나 그 좌절로 인해 치유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안의 일제 잔재를 알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되겠는가.

반민특위는 무산됐고,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한 말 “일본이 패배했다고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조선이 위대하고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앞으로 100년도 넘게 걸릴 것이다. 우리가 총,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조선 민족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중략)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는 흉심은 불행하게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광복 70년. 우리는 과연 제대로의 역사를 지키고, 세워가고 있는가. 끊을 것은 끊고, 이을 것은 이어 나가는 역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