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소나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6.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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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하지(夏至)가 지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다. 부쩍 뜨거워진 여름 날에 기다려지는 것은 단연 소나기일 것이다. 불볕더위에 바짝 마른 대지를 적시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소나기는 예기치 못하게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산이나 들에서 갑자기 이를 만나면 낭패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반가우면서도 당혹스러운 손님인 여름 소나기를 송(宋)의 시인 화악(華岳)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 소나기(驟雨)

牛尾烏雲潑濃墨(우미오운발농묵) : 소꼬리에 검은 구름 짙은 먹물 뿌리고
牛頭風雨翻車軸(우두풍우번거축) : 소머리 머리쪽에 비바람 몰아쳐 수레바퀴 뒤집히네
怒濤頃刻卷沙灘(노도경각권사탄) : 성난 물결 잠깐 동안에 모래 여울 휩쓸고
十萬軍聲吼鳴瀑(십만군성후명폭) : 십만 군사의 함성처럼 폭포 소리 울리네
牧童家住溪西曲(목동가주계서곡) : 목동의 집은 개울 서쪽 모퉁이에 있는데
侵早騎牛牧溪北(침조기우목계북) : 이른 새벽 소를 타고 개울 북쪽으로 풀 뜯기러 갔다가
慌忙冒雨急渡溪(황망모우급도계) : 황망하게 비를 무릅쓰고 급히 개울을 건너는데
雨勢驟晴山又綠(우세취청산우록) : 비의 기세 드세더니 갑자기 맑아지니 산은 다시 푸르다


※ 여름 날 소나기를 갑자기 만나면, 가장 황망하게 되는 사람 중에 하나는, 집에서 멀리 소를 끌고 나간 목동(牧童)일 것이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비가 내릴 기미가 전혀 없었던 터였다. 그런데 한순간에 갑자기 하늘이 표변하였다. 소를 몰던 목동은 화들짝 놀라 하늘의 기색을 살펴보았다. 붙들고 있는 소의 꼬리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까만 구름이 깔려 있었는데, 시인의 눈에는 마치 누군가가 진한 먹물을 뿌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소의 머리 쪽은 어떠했을까? 그 쪽으로는 강한 비바람이 치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마치 수레바퀴를 뒤집을 듯 거세다. 소나기가 한바탕 몰려온 것이다. 순식간에 성난 파도가 만들어져 모래 여울을 휩쓸어 버렸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는 들리지 않았던 폭포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차던지 마치 십만 군사가 한꺼번에 내지르는 함성 같았다. 이 갑작스런 소나기에 혼비백산한 것은 목동(牧童)이었다. 이 목동(牧童)의 집은 개울 서쪽 모퉁이에 있었는데, 새벽에 소를 타고 개울 북쪽으로 풀 뜯기러 왔던 터였다. 소나기에 깜짝 놀란 목동은 비를 무릅쓰고 급하게 개울을 건너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비가 그쳤다. 세상을 삼켜버릴 듯 기세등등하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멈추고 하늘이 맑아졌고, 소나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산이 또 녹색 빛을 띠고 나타났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갑작스러운 것이 여름철 소나기인 것이다. 

여름철 소나기는 소란한 듯, 무서운 듯하지만, 기실 여름 무더위에 가뭄에 지친 생명들에게는 그야말로 생명의 감로수(甘露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소나기의 소란함은 여름 숲을 더욱 맑고 곱게 하려는 치장의 소리요, 소나기의 무서움은 세수 하지 않으려고 떼쓰는 어린 아이를 어르는 어머니의 호통 같은 것이라고 보아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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