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살이
한해살이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6.2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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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봄여름에 걸쳐 수많은 꽃들이 피어난다. 사람들은 꽃이 피어 있을 때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이다가 꽃이 지고나면 아예 그 존재마저도 까맣게 잊고 만다. 한해살이풀을 포함하여 모든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 이유는 종족 번식에 있겠지만, 사람들은 그저 꽃에 열광할 뿐, 꽃이 열매가 되고, 이 열매의 씨가 다시 풀이 되어 꽃을 피운다는 사실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젊고 화려한 날들은 얼마 되지 않고 늙고 초라한 날들이 훨씬 더 길다. 그 짧은 전성기에조차도 봐주는 사람이 없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런 꽃과 인물은 얼마나 불행한가? 

당(唐)의 시인 진자앙(陳子昻)은 봄과 여름에 피었으나 아무도 봐주지 않는 숲속의 꽃들을 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곱씹어 보았다.

◈ 살다보면(感遇)

蘭若生春夏(난약생춘하) : 난초와 두약이 봄과 여름에 자라
芊蔚何靑靑(천울하청청) : 무성하여 어찌 그리도 푸른가
幽獨空林色(유독공림색) : 그윽히 홀로 빈숲에서 어여삐 피어나 
朱蕤冒紫莖(주유모자경) : 붉은 꽃잎이 자줏빛 줄기를 덮었네
遲遲白日晩(지지백일만) : 뉘엿뉘엿 해는 저물고
嫋嫋秋風生(뇨뇨추풍생) : 솔솔 가을바람 불어 온다네
歲華盡搖落(세화진요락) : 한해살이 꽃 모두 다 흔들려 지고마니
芳意竟何成(방의경하성) : 꽃의 뜻은 끝내 무엇을 이루었던가

※ 난초(草)와 두약(杜若)은 모두 한해살이풀이다. 이른 봄에 싹을 틔우고 봄 여름에 걸쳐 꽃을 피운다. 꽃 먼저 피는 이른 봄의 나무 꽃들과 달리 이들 한해살이풀들은 꽃이 필 때 잎사귀도 가장 푸르고 무성하다. 난초와 두약도 예외가 아니라서 늦봄과 초여름에 걸쳐 잎은 무성해질 대로 무성해지고 꽃은 붉은 자태를 유감없이 뽐낸다. 이렇듯 무성하고 아름답건만, 인적이 닿지 않는 숲속에 있다 보니, 보아주는 사람 하나 없다. 시인은, 곱지만 봐주는 사람이 없는 외진 숲속의 난초와 두약의 모습에 재주는 뛰어나지만, 아무도 발탁해주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꽃은 또 하루가 저무는 게 야속하기만 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속절없이 하루하루 가다보면, 얼마 안 있어,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꽃은 모두 흔들려 떨어질 터이고, 이와 더불어 누가 봐주리라는 희망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시인은 누구에게도 발탁되지 못한 채,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이러한 한해살이 꽃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해살이풀들도 꽃을 피울 때가 있다. 이 때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면, 이 풀들은 영영 사람들 눈에 띄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젊은 기백과 왕성한 의욕이 있을 때, 그를 알아보고 발탁하는 사람이 없다면, 늙고 의욕도 없을 때, 그를 데려다 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초조해 할 필요는 없다.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면 그만인 것이다. 쓰이는 것이 꼭 능사(能事)는 아닐 것이다. 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꽃은 꽃이요,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인생은 인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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