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사회공동체의 위기
메르스와 사회공동체의 위기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5.06.1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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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메르스에 대한 국민적 공포는 이제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나라의 외교를 위한 대통령의 국정수행조차 중단될 정도이니, 국가적 위기라는 말도 호들갑으로 들릴 만큼 처참한 지경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여름 휴가철 중국 관광객 특수마저도 이미 예약이 취소되거나, 아예 문의마저 끊어지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그동안 선호했던 한국 대신 일본 등지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니 국가 전체의 경제적 손실은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 가늠조차 힘겹다.

그뿐인가. 형편없는 전염병 관리국이라는 비웃음과 함께 입국 기피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빚어지는 치명적인 국가경쟁력 하락을 생각하면 “이게 무슨 나라냐?”라는 탄식에 저절로 공감이 간다.

그러나 나는 이보다 더 큰 위험이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하고 있음에도 아무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음이 더 큰 위기로 보인다.

바로 국민들 마음 깊은 곳에 항상 따뜻하게 간직돼 있던 사회공동체 의식의 속절없는 몰락이다.

돌이켜 보라.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리로, 광장으로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던 붉은 물결. 그리고 삭풍한파가 몰아치던 겨울 바다를 오히려 뜨겁게 달구었던 태안 기름유출사고 당시의 자원봉사 물결. 2007년 12월에서 2008년 봄으로 이어지던 태안 기름유출사고 당시 자원봉사의 길고 견고했던 인간의 띠에 이르면 한국의 기적이 오로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빚어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비극인 탓에 빛이 바래고는 있으나, 진도 팽목항을 눈물로 얼룩지게 했던 세월호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따뜻한 손길을 우리는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아무도 고마워하거나 아무도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서로의 용기를 북돋워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돌이켜 보라. 이쯤이면 그야말로 목숨 걸고 낙타가 옮긴 것이라는 바이러스와 맞서는 용감한 의사들에 대한 격려의 글이 인터넷을 도배할 만도 한데 너무나 조용하다. 게다가 아무도 자원봉사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물론 생명이 걸린 전염병인데 자원봉사에 함부로 나설 문제가 아닌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과 정부 관계자에 대한 격려 댓글이 사라져 조용한 인터넷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국가경제의 위기이거나 경쟁력의 하락, 대외 신인도의 극복을 포함해 발길을 돌리고 있는 중국 관광객을 다시 불러 모으는 일은 앞으로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건강한 나라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선행조건이긴 하다.

문제는 세월호에서 메르스로 이어지는 국민적 불신을 떨쳐 내고 서로의 믿음을 회복하는 일인데….

사회공동체 의식조차 송두리째 빼앗긴 채 ‘숨어 우는 바람소리’ 신세가 된 불쌍한 백성은 앞으로가 더 걱정인 나라, 유월 휴일에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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