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권 생명수 공급·홍수 조절 … 주민들엔 원성의 대상
중부권 생명수 공급·홍수 조절 … 주민들엔 원성의 대상
  • 엄경철 기자
  • 승인 2015.05.21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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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3개 국립공원 2개 다목적댐 지역발전 규제인가 기회인가

(3) 대청댐과 충주댐

충북은 바다가 없는 내륙도시다. 충남, 대전, 세종, 강원, 경기, 경북, 전북에 둘러쌓여 있다. 그런 충북에 대청댐과 충주댐이라는 거대한 인공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다 5대 다목적댐에 속하는 두 댐은 금강유역과 한강유역의 젖줄이다. 중부지역에 위치한 대청댐은 충청지역에 물을 공급하고 홍수도 조절한다. 충주댐은 수도권 용수 공급하고 있다. 특히 남한강의 유일한 홍수조절용 댐이다. 이처럼 충북의 두 다목적댐은 생명의 원천인 물과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재난재해를 막기 위한 치수의 최첨병 역할도 하고 있다.

댐 건설로 수몰 발생 … 수만여명 실향민들 생활에 어려움
지역발전 큰 역할 불구 규제탓 주변 낙후·농작물 등 피해

◈ 금강유역의 거대 호수 대청댐

댐청댐 건설은 1975년 3월부터 시작됐다. 공사 시작 5년9개월만인 1980년 12월 댐이 완공됐다. 대청댐은 당시 충남 대덕군과 충북 청원군 사이의 금강줄기를 막았다. 두 지역의 머리글자를 따서 대청으로 댐 이름을 지었다.

댐 건설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1500만평의 논밭이 물에 잠겼다. 조상대대로 이곳에서 삶을 영위했던 4275가구 2만5925명의 실향민이 생겼다. 

대청댐 수몰지역은 충북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당시 청원군, 보은군, 옥천군의 비옥한 농토가 물에 잠겼고, 많은 실향민이 생겼다. 일부는 물에 잠긴 고향 땅 가까운 곳에서 새 터전을 만들어 살았지만 상당수가 도회지로 이주했다.

보상금으로 목돈을 챙긴 사람들은 청주, 대전, 서울 등지로 이주했다.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옥토가 수장된 대가의 목돈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농사만 짓던 실향민들은 얼마되지 않는 자본금을 장사 미천으로 삼아 도시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한 채 보상금만 날렸다. 그리고 일부는 도시의 새로운 빈민으로 전락했고, 일부는 다시 고향을 찾아 돌아왔다.

고향을 떠나지 못한 실향민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물 속에 잠긴 집과 농토와 가까운 곳에서 새 삶의 터전을 만들어 정착했다. 일부는 호수 주변의 땅을 개간하고 농토를 만들며 생계를 유지했다. 일부는 농부에서 어부로 전환했다. 거대한 인공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농사도 지었다.

그러나 그 삶이라는 것이 그리 넉넉지 못했다. 인공호수가 생긴 이래 안개일수가 많아지는 등 환경변화는 농작물 수확에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일조량이 부족하고 농작물의 생육에 지장을 초래했다.

어부들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댐 건설 초기 호수에서는 먹고 살만큼 넉넉하게 고기가 잡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획량은 줄어들었다. 수질오염이 심각해지면서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았다. 

호수의 수생태계도 변화가 심했다. 외래종인 베스와 블루길로 토종 붕어 등의 서식지가 크게 위협받았다. 해를 거듭할 수록 토종어류의 개체수가 감소했다. 지금은 수질이 크게 개선되고 있지만 어족자원은 옛날만 못하다. 

무엇보다 댐주변 지역주민들을 괴롭힌 것은 각종 규제였다. 규제가 풀리지 않는 한 낙후성을 면할 길이 없었다. 여기에 지금은 지역의 관광명소가 됐지만 청남대까지 규제에 한 몫하면서 지역주민의 원성이 높았다.

대청댐은 이처럼 담수지역 80% 이상을 차지하는 충북인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인공호수였다. 반면에 금강 하류지역인 대전 등 충청지역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다시말해 이들 지역은 대청댐으로 생긴 거대 인공호수가 생명의 원천이 됐다.

◈ 남한강 유일의 다목적댐 ‘충주댐’

1984년부터 담수를 시작한 충주댐은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조동리 사이의 협곡에 세워진 다목적댐이다. 수도권에 물을 공급하고 홍수조절을 담당하고 있다. 댐 건설로 한강유역 용수난이 해결됐다. 

연간 6억톤의 홍수조절로 한강수위를 1m까지 낮추게 됐다. 강원도 상류지역 등에서 폭우가 쏟아지면 남한강을 따라 한강으로 유입, 경기지역, 서울 등이 위협받는다. 충주댐은 이들 지역의 홍수 피해를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댐 건설 이후 여러 차례 수도권 지역의 범람위기를 충주댐이 막아냈다. 

전력도 공급하면서 용수와 함께 수도권 지역의 산업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충주댐은 경인지구 등 한강유역권에서 사용하는 45억톤의 용수 중 33억여톤을 공급하고 있다. 그리고 충주는 내륙의 관광호반도시를 꿈꾸게 된 것이다. 댐 건설로 생긴 내륙의 호수 충주호는 충주댐~월악산국립공원~단양팔경을 잇는 수로 관광길을 열었다.

충주댐은 충북 북부지역의 자연, 인문,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물길 차단에 따른 생태계 변화, 안개 등 기상변화, 하상, 퇴적 등 수위변화, 인구감소 등 댐주변 주민생활변화, 농경기 수몰에 따른 경제여건 변화, 도로, 교통 등 인문사회적 변화 등을 동반했다.

특히 안개일수 증가는 농작물 피해와 주민건강 저해로 이어졌다.

가장 큰 변화는 댐 상류지역에서 생겼다. 충주댐 건설로 상류지역인 단양군은 단양군청 등 읍소재지를 통째로 옮겼다. 옛 단양군청은 현 단성면에 있었다. 충주댐 건설로 단성면 소재지 대부분이 물에 잠기게 됐다. 단양군청을 비롯해 각종 기관, 지역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군청 소재지인 한개의 읍이 통째로 옮기는 대역사가 시작됐다.

단양읍은 단성면 시대를 마감하고 지금의 단양읍 신도시로 옮겨졌다. 그리고 올해로 이주 30년을 맞았다. 충주댐은 그렇게 상류지역인 단양군의 지도와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제천 청풍면 지역도 충주댐으로 인해 이주민이 발생했다. 

많은 지역주민의 삶의 터전이 물에 잠겼다. 이주민들은 단양읍 신사기지로 옮겼지만 일부는 아예 제천 등 외지로 나갔다.

정부는 충주댐 수몰에 따른 단양관광이라는 지역발전을 약속했다. 단양을 호반 관광도시로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댐 건설 30년 동안 정부의 약속은 아직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엄경철·충주 윤원진·제천 정봉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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