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낙화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5.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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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봄은 꽃과 함께 왔다가 꽃과 함께 간다. 사람들은 꽃이 피는 것을 보고 봄이 왔음을 실감하고, 꽃이 지는 것을 보고 봄이 지나감을 자각한다. 결국 꽃이 봄의 흐름을 알려주는 시계인 셈이다. 시계가 고장 나 돌지 않는다고 해서 시간이 멈추는 게 아니듯이, 꽃을 지지 않게 하더라도 봄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낙화(花)를 막아보려고 애쓴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도 그런 사람이었다.

◈ 지는 꽃잎을 보며(落花古調賦)

留春春不住(유춘춘부주) 봄을 잡아보지만 봄은 머물지 않고
春歸人寂寞(춘귀인적막) 봄이 가면 남은 사람만 쓸쓸해지네
厭風風不定(염풍풍부정) 바람을 짓눌러보지만 바람은 가만있지 않으니
風起花蕭索.(풍기화소삭) 바람 일자 꽃은 쓸쓸하게 지고 마네


※ 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매달려 붙들 수만 있다면, 붙들어 두고 싶은 봄이지만, 야속한 봄은 머물러 주지 않는다. 봄은 일 년 사계절 중 하나일 뿐이지만, 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인에게 봄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손님이다. 그 손님은 이미 석 달을 머물렀지만, 시인은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다. 더 머물게 하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써 보지만, 그 손님은 정해진 시간 외에 잠시도 더 머물지 않고 떠나간다.

시인에게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이별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봄이 돌아가고 난 자리에 홀로 남겨진 시인은 외롭고 쓸쓸한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렇게 만류했건만 봄은 왜 간 것일까? 시인은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바람만 불지 않았어도 꽃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꽃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봄이 갈 리가 없다고 본 것이리라. 물론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겠지만, 봄과의 이별이 너무나 아쉬운 시인으로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의 상상은 바람을 눌러버려 아예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는 데까지 이른다. 그래서 바람을 눌러보았지만, 실망스럽게도 바람은 붙들리지 않고 빠져나가고 만다. 시인의 억누름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일어난 바람은 끝내 꽃을 찾아가고야 만다. 바람을 피할 도리가 없는 꽃은 쓸쓸히 떨어지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이로써 봄은 가고 만 것이다. 봄을 직접 만류해 보기도 하고, 그것으로 안 되니까 바람을 억눌러 일어나지 못하게도 하는 등, 봄을 보내지 않기 위한 시인의 발상이 참으로 운치가 있고 재치가 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봄은 어차피 떠나고 만다. 사람들은 낙화(花)라는 자연의 시곗바늘을 통해 봄이 감을 실감나게 느낀다. 꽃이 지는 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쓸쓸해지기 쉽지만, 그렇다고 애상에 빠질 필요는 없다. 꽃은 때가 되면 다시 피기 마련이고, 그 꽃과 함께 봄은 또 올 것이기 때문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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