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은 요술쟁이
봄바람은 요술쟁이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3.3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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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땅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생명의 씨앗들이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파릇한 싹이 되어 나오고, 겨울 칼바람에 앙상한 가지만으로 버티던 나무들에는 연둣빛 이파리들이 돋아나 나무 본연의 모습이 되살아난다. 봄의 마법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이 마법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말할 것도 없이 봄바람이다. 겨울의 사납고 매정한 바람을 몰아내고 대지를 점령한 봄바람의 가장 큰 무기는 따스함과 촉촉함이다. 봄바람은 이 무기들을 자유자재로 휘둘러서 대지에 생명의 향연을 연출한다. 

송(宋)의 시인 방악(方岳)은 봄바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춘사(春思)

春風多可太忙生(춘풍다가태망생) : 봄바람은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너무 바빠서

長共花邊柳外行(장공화변류외행) : 긴 시간 꽃 가와 버들 밖으로 지나다닌다

與燕作泥蜂釀蜜(여연작니봉양밀) : 제비는 진흙집을 짓게 해주고 벌은 꿀을 빚게 하며

纔吹小雨又須晴(재취소우우수청) : 잠깐 짬을 내 보슬비를 불어 날리니 날은 또 개이리라 


세상에는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기적들이 많이 있지만 이것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죽은 것이 되살아나는 기적일 것이다. 이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것이 바로 봄바람이다. 봄바람은 기적의 마법사이자 요술쟁이이다. 도대체 못 하는 일이 없고 안 닿는 데가 없다. 겨우내 죽어 있던 사물들을 분주하게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꽃이면 꽃, 잎사귀면 잎사귀, 어느 것 하나 봄바람의 입김 없이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봄바람은 언제나 온갖 꽃들의 주변을 맴돌며 그들을 활짝 피어나도록 하는가 하면 버드나무 외곽으로도 빙빙 돌며 버드나무에게 생명력을 쉼 없이 불어넣는다. 봄의 대지를 화려하게 수놓는 형형색색의 꽃들과 봄의 창문에 연록의 커튼을 드리우는 버드나무 가지들이야말로 봄바람 마법사가 만들어낸 걸작이 아닐 수 없다. 

봄바람의 오지랖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겨울에는 보이지 않다가 봄이 되자 어디선가 제비와 벌이 나타난 것도 알고보면 봄바람의 연출이다. 제비는 진흙을 물어다가 둥지를 새로 단장하고 벌은 부지런히 꽃들을 순례하며 꿀을 빚어낸다. 모두가 봄바람의 지시에 따른 액션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봄바람은 심지어는 날씨마저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다.

보슬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일을 마쳤다 싶으면 곧장 그것을 불어 밀어내고 그 자리에 화창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도록 하니 말이다. 

봄의 구석구석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예리한 눈으로 읽어낸 시인의 눈썰미와 그것들 모두가 봄바람이 연출한 것으로 둘러대는 시인의 능청이 잘 어우러져 읽는 이로 하여금 경탄과 유쾌함을 맛보게 한다고 할 수 있다.

물은 낮은 데로 흐르지만 바람은 높낮이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봄바람은 하늘로 땅으로 대지의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누빈다. 그래서 꽃을 피워내고 나뭇잎을 돋운다. 보슬비가 내리는 어두운 분위기를 밝은 빛으로 바꿔 놓기도 한다. 이처럼 봄의 모든 것을 만들고 연출하는 봄바람에게, 모든 것을 마음먹은 대로 척척 해내는 요술쟁이야말로 가장 잘 어울리는 별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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