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밟기
보리밟기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5.03.26 17: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반영호 <시인>

오랜만에 나들이를 했다. 봄나들이다. 버들개지는 이미 눈을 텄고 일찍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곧 망울을 터트릴 모양이다. 개울가 축 늘어진 능수버들 가지도 노릇노릇한가 하면 쌍쌍이 짝을 이루어 분주히 자맥질을 하는 물오리들의 모습에서 사랑의 계절임을 느끼게 된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농사준비가 한창이다. 과수원에서는 전지작업을 하고, 폐비닐 수거를 하고, 경운기나 트랙터로 나르고 있는 가축의 분뇨야말로 진한 농촌의 향수를 맡게 한다. 논두렁 밭두렁에는 삼삼오오 모여 나물을 캐고 있는 아낙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렇게 새롭게 농사일을 시작하는 시기. 씨앗을 뿌릴 봄날에 싹이 시퍼렇게 돋은 보리밭을 보면 신기하다. 작년 가을에 파종하여 싹이 뼘이나 자란 상태로 겨울을 났다. 생명력이 강한 잔디도 겨울에는 싹이 말라죽거니와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경고판을 보는데 얼마나 강한 작물인가. 이맘때가 되면 보리밟기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제약을 받는다. 통제, 제한, 규정, 기분, 규율, 규제 등 질서와 충돌을 막기 위한 장치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를 어기면 안 되게끔 상벌도 정해 놓는다. 집단생활을 원만하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법 이전 도덕에 가까운 일이다. 이런 장치는 물론 사전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아무리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 하더라도 불평불만을 할 수가 없다. 이는 비단 사람들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동물이나 식물들이 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야 문자서류화 해놓았지만, 동식물들은 오랜 습관과 반복적 훈련에 의해 규율을 주입시킨다. 몸에 배게 된 이런 습성들은 점차 DNA로 발전되어 동식물마다 가지고 있는 색다른 특성으로 변한다. 야생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신기한 모습들이 많다. 벌이나 개미들은 어떻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맡은바 자기 일을 해나가는지 기특하기만 한데 관찰해보면 이들도 다 감시자가 있고 이를 어기는 것들을 징벌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또 나무들을 보면 그 많은 씨앗이 떨어져 싹이 튼다면 온통 그 나무들로 인해 뒤덮일 것이고 그 씨앗을 떨군 어미 나무마저 살아나지 못할 것이나 절대로 그런 일은 없으니 이 또한 그들만의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닐까? 강아지들은 태어나자마자 형제끼리 다툼을 한다. 젖 먹는 것부터 잠자리나 쉼터까지 서열을 다투고, 정해지면 이게 그들만의 규율이고 법이 된다. 이후에도 약자가 힘이 생겨 강해지면 즉시 쟁탈전을 벌이곤 하는데 여기서 새로운 승자가 나타나면 승자가 우선 서열의 앞이 된다. 새끼들이 물고 뜯는 쟁탈전을 벌여도 어미는 절대로 끼어들지 않고 참견조차 하지 않는다. 만약 서열 다툼이 아닌 다른 사건으로 새끼가 깨갱거렸다면 어미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유치원부터 초, 중, 고, 대학까지 20여 년 가까이 교육을 받는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숙지하는 일이다. 배우고 익힌 것들을 사회에 나가서 실수 없이 잘 행하라는 것이다. 학교생활은 힘겹다. 원만한 인간이 되기 위한 수업은 힘겹다. 요즘은 보리농사 짓는 농가가 별로 없다. 수익성이 없는 탓으로 기껏해야 퇴비나 사료용으로 재배된다. 그런 보리를 보며 시 한 수를 써 본다.

꼭 이맘때가 되면 홍역 치르듯/다스려지지 않는 들뜬 마음을 막을 수가 없다/덩달아 시기하며 시비를 걸어오는/샘 많은 바람이 궁둥이를 추썩거렸으니/얌전했던 가슴에 불이 붙은 거야/걷잡을 수 없이 붕 떠 그대로 솟아 버린 서릿발/이랑과 고랑 사이/웃자란 맘을 추슬러야 한다고 밟고 밟는다/그래야 훗날/어느 도도한 양반네 앞에서든/까락수염 빳빳하게 세우고 고고할 수 있으리/보리는 어느 상황이건/절대로 머리수그리지 않는다. /반영호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