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지 않는 50대를 꿈꾸며
철들지 않는 50대를 꿈꾸며
  •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
  • 승인 2015.03.0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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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리>

#내 나이 50.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50대가 됐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50대. 친구들은 기업의 이사가 됐다고 밴드에 올라오고 동기들은 교직의 최고봉인 교장이 되는 연수에 지명되기 시작했다. 존경하고 좋아했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은 퇴임사를 보내며 은퇴를 알린다. 설렘과 우울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라고 회고했던 공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이 50이 큰 무게로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지는 못하겠다. 

노년 심리학자 칼스텐슨(L. Carstensen)은 사람들이 삶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는 10대 후반부터 내림세로 접어들어 40대 후반쯤 바닥을 친 뒤 다시 상승곡선을 탄다는 ‘U자형 행복곡선’ 이론을 내놓았다. 

50대부터 정말 더 행복해진다고?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최고인 우리나라 현실과 잘 맞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돈, 질병, 자녀의 유무 등과 같은 외형적 조건보다는 내면의 변화가 행복을 좌우한다면 이 이론은 설득력이 있다. 

아무리 큰 슬픔이나 분노와 직면해도 너끈히 삭혀낼 성숙한 내면의 힘을 세월과 함께 갖추게 되는 50대 이후. 죽음과 한 발짝 더 가까워질수록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먼 미래보단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 살게 되니 행복해질 밖에 없다는 것이 칼스텐슨의 이론이다.

이제 ‘U 행복곡선’의 최저점인 40대를 찍었으니 앞으로 50대 이후는 쭉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U자 곡선의 초반부에서처럼 다시 철없는 어린아이로 돌아가야 하는 거다. 아이처럼 사소한 즐거움을 만끽하여 살다 보면 노년의 행복을 앞당겨 누릴 수도 있을 터이다. 철이 들이 않는 50대 이후의 삶을 꿈꾼다. 그러려면 미리미리 연습을 해야겠다. ‘나잇값 못 한다.’라는 소리를 좀 듣긴 하겠지만, 너무나 어른스러운 우리 조직과 사무실에 철들지 않은 50대 몇 명 있는 것 또한 괜찮지 않겠는가?

# 회식자리에서 건배 사가 길어지거나, 마이크를 잡으면 놓지 않거나 다 큰 자식에게 몇 시간씩 설교를 한 경험이 있다면 ‘와그라 증후군’을 의심해 봐야 한다(정신의학자 이나미 박사). ‘와그라 증후군’은 치매나 노화 증상은 아니지만 생각이 중심을 잃고 곁가지를 맴도는 증상으로 단어가 잘 기억나지 않고, 이름이 혀끝에 맴돌긴 하는데 기억을 못 하거나, 엉뚱한 단어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필요한 물건을 이미 구입했음에도 또 쇼핑을 하거나 은행이나 관공서를 여러 번 들락거린다면 이 역시 ‘와그라 증후군’에 따른 것일 수 있다.

와그라 증후군은 50대에 전반적인 호르몬 기능 실조, 뇌 세포 노화 위축 등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이나미 박사는 이런 증상에 대해 너무 초조할 필요는 없지만 건강하고 아름다운 청년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음을 정신적으로 수용해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한다.

#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비 되고/ 할배 되는/ 아름다운 시절들/ 너무나 너무나/ 소중했던 시간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가수 서유석의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에서)’

늙어가 보는 새로운 경험을 앞둔 지금, 철없는 아이로 다시 돌아가는 철없는 50대를 꿈꾼다. 그런데 이렇게 횡설수설 하는 걸 보면 분명히 난 ‘와그라 증후군’ 초기인가 보다.

하여간 그동안 어수선한 글 읽어준 독자들께 감사를 드리며 더 철들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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