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삶
  •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 승인 2015.02.2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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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몇년전 아주 친하게 지내는 동료 교사가 M 방송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 후 앞으로 절대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되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만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고기를 먹지 않는다. 방송에서 다룬 내용이 무엇이기에 맛있는 순대집을 찾아 시골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던 그녀의 식성이 한순간에 바뀐 것일까? 

다큐멘터리는 사람들이 고기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비윤리적으로 동물을 길러내는지를 다루고 있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동료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니어링 부부가 쓴 두권의 책 ‘조화로운 삶’, ‘소박한 밥상’을 권했다. 

동료는 책에 밑줄을 쳐가며 정말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죄책감 그리고 예민함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고는 마음을 좀 놓는 듯했다.

도서 ‘조화로운 삶’(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저) 한국어판은 재생 용지로 만들어 일반 책보다 아주 가볍다. 그래서 평소 페이지가 잘 젖혀지지 않는 무거운 양장본을 꺼리는 나에게 그만이다. 문장도 쉽고 잘 넘어간다. 그러나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 띠지를 붙이며 읽다 보니 책 옆면이 띠지로 빽빽할 정도다.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1932년 니어링 부부는 뉴욕을 떠나 버몬트 시골로 이사해 밭을 일구고 손수 집을 짓고 살아간다. 사실 스콧 니어링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정확히 짚고 예측한 석학이며 버트란트 러셀에 버금가는 연설과 강연으로 수천명을 흥분시켰던 명연설가였다. 아동노동 학대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다가 교수자리에서 쫓겨나고 반전 논문을 발표하여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로 한 트루먼 대통령에게는 “당신의 정부는 더 이상 나의 정부가 아닙니다”라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

급진적인 원리주의자인 스콧 니어링은 뉴욕을 떠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불황과 실업의 늪에 빠져서 파시즘의 먹이가 되어버린 사회… 신념을 지키며 교직에 머물 수도, 언론에 글을 쓸 수도, 방송에 발표할 수도 없었다.” 

니어링 부부는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원칙을 세운다. 살아가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되도록 자급자족한다. 돈을 모으지도 않고 빚을 지지도 않는다.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남는 시간은 여가를 즐긴다. 집짐승을 기르지 않고 채식을 한다 등.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자본주의 삶의 패턴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여 사람들을 점점 더 탐욕스럽게 만들어 덫에 가두려고 하는 것을 거부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지만 가장 높은 수준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간 두 부부의 실천적인 삶을 통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자연과 일치하여 평화롭게 사는 삶은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이지만, 시간의 흐름을 타기 위해 어떤 생활 방식보다도 계획적으로 잘 정돈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화로운 삶’의 원제는 ‘Living the Good Life’다. ‘Good Life’의 의미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번역은 ‘조화로운 삶’이겠지만 인류를 넘어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항시 유지했던 니어링 부부의 삶에 어울릴 만한 의미를 하나 덧붙이면 선한 삶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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