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과 타향살이
설과 타향살이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2.1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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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설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고향일 것이다. 사람들은 설 명절을 고향에서 보내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들이고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설빔을 곱게 차려입은 채 차례를 올리고, 성묘를 하고, 세배를 다니는 등 기쁘고도 분주한 날이 설인 것이다. 그러나 고향에 갈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에게 설날은 가장 외로운 날이기도 하다. 당(唐)의 시인 유장경(劉長卿)도 설을 외롭게 타지에서 보내야 하는 처지였었다.

◈ 신년에 짓다(新年作)

鄕心新歲切,(향심신세절), 고향 생각 새해에 간절한

天畔獨潸然.(천반독산연). 하늘가 먼 곳에서 다만 눈물 흘릴 뿐

老至居人下,(노지거인하), 늙음이 이르러 사람 아래 자리 잡았고

春歸在客先.(춘귀재객선). 봄은 돌아와 나그네 앞에 서 있네

嶺猿同旦暮,(령원동단모), 고갯마루 원숭이들도 아침저녁 함께 살고

江柳共風煙.(강류공풍연). 강가의 버들도 바람과 안개와 같이 하는구나

已似長沙傅,(이사장사부), 이미 장사의 태부와 같아

從今又幾年(종금우기년). 이제부터 또 몇 년을 지나야 하나

※ 객지를 떠도는 나그네들에게 설은 무엇일까?

가족, 친지와 떨어져 있고 고향에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설이 결코 달갑기만 한 날은 아닐 것이다. 다른 가족들의 화목한 모습과 풍성한 상차림은 객지의 나그네들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 것이다. 마침 시인도 낯설고 먼 하늘 한 모퉁이에서 새해를 맞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새해인지라 고향 생각이 절실하건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저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타지에서 설을 맞는 시인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절절히 묻어나는 대목이다. 객지에서 설을 맞은 시인의 아래로 성큼 다가온 것은 다름 아닌 늙음이다. 타향에서 맞은 설의 쓸쓸한 느낌은 늙음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 것이다. 시인의 아래로 늙음이 와 있었다면 그의 앞으로는 봄이 고향처럼 돌아와 서 있었다. 시인에게 늙음은 달가울 리 없는 불청객이었겠지만 봄은 같은 불청객이었기는 하되 반갑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왜냐하면 봄과 함께 고갯마루 원숭이도 돌아왔고 강가의 버드나무도 돌아왔기 때문이다.

고갯마루 원숭이는 아침저녁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이고 강가의 버드나무는 바람과 안개를 같이 즐길 인생의 동반자가 아니던가? 봄의 귀래(歸來)에 위안을 느낀 것도 잠시. 시인은 다시 앞으로도 언제까지고 끝날 것 같지 않은 나그네 신세에 대한 걱정에 한숨이 입 밖으로 절로 새어 나오고 말았다.

가족 친지와 고향에서 맞는 설은 설레고 기쁜 날이지만 거꾸로 타지에서 홀로 외롭게 맞는 설은 도리어 쓸쓸하고 서글픈 날이기도 하다. 객지에서 맞는 설을 마냥 한탄만 하고 있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외로움의 이면은 한가로움과 자유로움 아니던가? 부쩍 가깝게 온 봄을 찾아 한가롭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혼자 맞는 설이 결코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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