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기억 속 따뜻했던 추억들을 살며시 꺼내 봅니다
빛바랜 기억 속 따뜻했던 추억들을 살며시 꺼내 봅니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02.16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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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는 가족공동체

1976년 까무룩한 어느 날,
온 가족이 시골집 마당에 모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건장하게 자란 자식들과 부모님이 함께한 이 날,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는지 기억엔 없지만
촌스러운 듯 정겨운 가족들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경상도 출신의 아버지와 충청도 출신의 어머니는
결혼해 10남매를 낳았지만
전쟁으로, 병으로 둘을 잃고 8남매를 키우셨습니다.
농사를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사셨던 부모님은
삶도 흙처럼 정직하고 소박했습니다.

집이래 봐야 안방과 건넛방, 사랑방이 전부였고
10명의 대가족은 그 속에서 늘 복닥이며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육 형제가 밥상을 물려야 어머니와 두 딸의
차례가 돌아왔고,
거뭇한 쌀보리밥에 김치와 동치미, 알타리무우가 전부지만
반찬 투정할 새도 없이 뚝딱 먹어치우곤 했습니다.
제비 같은 자식들의 입이 무섭다고 하실 정도로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가난이 일상이던 그때, 명절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1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 사탕과 과자, 푸짐한 음식이
누구네 할 것 없이 집집이 넘쳐났으니까요.
대목장날이면 길 나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왁자한 소리가
온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차례상에 자식들 설빔까지 준비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죠.
쓸데없이 돈 쓸까 평소 외출을 삼가시던 아버지도
이날만은 읍내 장터를 찾으십니다.
조상님께 깨끗한 모습 보여야 한다며 이발소로 향하지만
대목장날 세상 구경하는 재미도 놓치고 싶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렇게 읍내 떡 방앗간은 밤낮없이 돌아가고,
고샅길은 대낮에도 전을 부치는 냄새로 고소해졌습니다.
큰집이 아닌데도 어머니의 손길은 바빠집니다.
대가족이 명절을 배부르게 보내려면 돈 안 들이고 많은 음식을
장만해야 했으니까요.

고슬밥으로 단술을 만들고, 어른 손바닥만 하게 만두도 빚습니다.
배추를 소금에 절여 흰배추적을 소쿠리로 하나 가득 부쳐놓고,
가마솥에 불을 때 두부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꽁꽁 언 수돗물을 녹여가며 맞는 고된 명절이지만
몸을 조금 움직이면 자식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하나 힘에 부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명절아침은 유난히 일찍 시작합니다.
은밀하게 숨겨둔 어머니의 설 꾸러미가 풀리는 날이니
늦잠꾸러기 동생도 잠을 잘 수 없었죠.
둥그렇게 둘러앉은 형제들은 꾸러미의 크기로 이미
설빔이 옷인지 양말인지를 알 수 있었지만,
기다림의 순간은 그것으로도 즐거웠습니다.
어설픈 세배에 이어지는 부모님의 덕담까지.
60촉 전구 하나로 밝힌 안방에서
열 명의 가족이 무릎을 맞대고 시작한 설날 아침은
가난했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 있었기에 가난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습니다.
마당이 좁을 만큼 형제들 발길로 가득했던 시골집은
세월이 흘러 주인이 바뀌고,

8형제도 희끗희끗 머리가 세고 할아버지가 되어갑니다.

그 사이, 농촌은 도시로, 대가족은 핵가족화되면서
함께 있어도 혼자인 쓸쓸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는 게 팍팍하고 마음마저 가난해지는 이들에게

아득한 과거가 되어버린 유년의 기억을 통해
다시금 가족이란 이름의 그리움으로 들춰내 봅니다.

/글 연지민기자·사진제공 김운기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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