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현대사 아버지란 이름으로 치열하게 건너다
굴곡진 현대사 아버지란 이름으로 치열하게 건너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02.16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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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으로 본 가족공동체

흥남철수 · 파독광부 · 이산상봉 등 시대상 완벽 재연

험란한 인생 맨몸으로 살아온 이시대 아버지상 대변

급속한 현대화 · 불안한 시대 … `가족'의 의미 되새겨

영화 ‘국제시장’은 이름에서 두 개의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으로 남으로 가야 했던 피난처로써 남쪽 땅의 맨 끝점의 도시와 헤어져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포스트로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살아야 한다는 것’과 ‘가족’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바탕에 그려넣고 출발한 영화는 1951년 1.4 후퇴 때 벌어진 흥남철수로 시작한다. 배를 타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 바다는 아비규환으로 변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처절할 수밖에 없는 현장은 정글이나 마찬가지다.

주인공 덕수(황정민) 가족 역시 승선을 시도하지만 막순이를 잃어버리자 아버지는 덕수에게 장남이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돌보라고, 부산의 ‘꽃분이네’ 고모가게에서 만나자고 철석같은 약속하고 헤어진다. 아버지의 손을 놓는 순간 장남의 어깨에 올려진 가족의 무게감은 질기고도 질긴 책임감을 동반한다.

그렇게 흘러들어 간 국제시장. 고모 집에 얹혀 겨우겨우 살아가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어 어린 가장의 어깨를 짓누른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 궂은 일 마다치 않고 돈벌이에 나서지만, 커가는 동생들 뒷바라지도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선장이 되고 싶었던 꿈도 사치로 느낀 덕수는 동생의 학비 마련을 위해 독일 광부로 지원한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대가로 돈을 벌며 희생했던 덕수는 한국으로 돌아와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이도 잠시, 고모가 죽고 ‘꽃분이네’ 가게를 처분하려 하자 덕수는 가게를 사기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을 결심한다. ‘꽃분이네’는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포스트였기 때문이다.

그런 남편을 보며 아내는 “왜 당신만 희생해야 하느냐. 당신도 우리 가정의 가장이다”며 눈물로 만류하지만 “이게 내 운명이다”는 말로 절절한 심정을 드러낸다.

월남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덕수는 가정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남북화해 분위기 속에 늘 마음을 묵직하게 눌렀던 막순이를 찾는 모습과 마지막까지 ‘꽃분이네’ 가게를 지키려는 노인 덕수의 모습은 흥남에서 헤어진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장남의 눈물겨운 노력과 삶으로 투영된다.

역사의 거친 소용돌이를 지나온 덕수는 아버지의 옷을 끌어안고 “아버지 약속 지켰어. 나 정말 힘들었어”라며 흐느낀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나만이 아니라 자식 대까지 생각하는, 자신의 꿈보다 가족이 우선이었던 이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처럼 험난한 인생에 좌절하지 않고 맨몸으로 부닥치고 살아온 아버지는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화두를 던져준다. 국제시장이란 공간에서 지난하게 펼쳐지는 가족애는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신으로 투영돼 공감대를 형성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자식 세대들에게 낡은 세대로 치부 받고 있는 아버지, 가정에서조차 소외됐던 아버지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에 가족을 위해 모든 걸 다 바친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는 윤제균 감독의 의도처럼 영화에는 아버지의 희생과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 일찍 가장이 된 덕수가 서울대에 합격한 동생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파독 광부에 지원하는 모습, 한국에 돌아와서 동생의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베트남전 기술 근로자를 지원하는 장면, 극 후반부 덕수가 헤어진 동생과 만나는 장면 등은 가족을 위한 가장의 절절한 모습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때문인지 ‘국제시장’은 가족 관객층이 영화의 주제인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에 공감해 흥행에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인류사를 꿰뚫는 코드 중 하나가 ‘가족’이다. 급속한 현대화로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가족’은 삶의 에너지이자, 살아가는 이유임을 영화는 웃음과 눈물로 보여주고 있다.

/연지민기자

yeaon@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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