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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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 승인 2015.01.1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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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얼마전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보육교사의 폭행 사건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 건장한 어른이 연약한 어린아이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을 보며 어떻게 아이를 보육하는 사람이 저렇게까지 폭력적일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도서 ‘다니’(김용규, 김성규 저)는 인간의 폭력성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책이다. 장르를 분류하자면 소설인데 이 책은 일반적인 소설과는 조금 다르다. 책을 읽는 동안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어 책을 읽고 나면 열심히 공부를 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지식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불리기도 한다.

책에 녹아들어 있는 심리학, 철학, 생물학, 생태학, 언어학, 역사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스토리를 끌고 가면서 지식과 스토리를 탄탄하게 묶는 작가의 상상력을 보면 도대체 저자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 책은 독일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형과 프랑스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동생 형제가 함께 썼다. 저자가 이미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겠지만 책의 참고문헌과 미주를 살펴보면 저자가 얼마나 꼼꼼히 문헌조사를 하고 공을 들여 책을 썼는지 짐작이 된다.

소설은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 접경지대에 있는 나망가 계곡에서 시작된다. 중국계 과학자 제니퍼는 인간이 침팬지와 수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나망가 계곡에 머물게 되고, 침팬지 중에서도 뛰어난 지능을 가진 ‘다니’를 만나 교감하며 우정을 나눈다. 그런데 나망가 계곡의 동쪽 숲을 개발하기 위해 벌목이 시작되자 서쪽 숲에 사는 다니가 속한 집단의 침팬지들이 동쪽 숲 침팬지 집단으로부터 한 명씩 참혹한 죽음을 당한다.

사회성이 있는 동물은 동종 살육본능을 억제하는 본능이 강해서 아주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동족 내 대량 학살(제노사이드)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환경이 나빠지면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제노사이드를 자행한다. 나쁜 상황이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만들고 그것에 심리적 강화작용이 계속되면 병적인 악성 공격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문화혁명 시기에 광기에 사로잡힌 홍위병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된 장면을 목격한 후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던 제니퍼는 침팬지 집단 안에서 이런 비정상적인 폭력행위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간다. 

지난해 밀양송전탑 철거에 동원된 경찰들이 브이자(V)를 그리며 찍은 사진이 공개돼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송전탑 건설의 정당성과 무관하게 강하게 저항하는 노인들을 강제로 끌어내는 과정이 절대 유쾌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사건을 겪은 직후 성취감을 만끽이라도 하듯 여경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을 보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심리적 강화작용이 떠올랐다. 여경들 역시 본인의 할머니와 비슷한 노인들에게 물리적인 폭력(물론 정당한 공권력이라 생각하겠지만)을 행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싸움,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나쁜 상황이 계속되다가 상황이 종결됐을 때 그들이 느낀 직접적인 감정은 해방감이었을 듯하다. 어린이집 교사의 비정상적인 폭력 행위도 열악한 근무상황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폭력의 뿌리를 단절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우리를 폭력적이게 하는 요인들을 줄일 수 있을 인간의 선한 의지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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