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사회의 안쪽
지식인 사회의 안쪽
  • 최 준 <시인>
  • 승인 2015.01.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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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최 준 <시인>

사람에게는 네 개의 눈이 있다고 합니다. 이목구비 중의 하나인 육안(肉眼)과 머릿속의 눈인 뇌안(腦眼), 마음속의 눈인 심안(心眼), 그리고 영혼의 눈인 영안(靈眼)입니다. 육안은 사물의 형상이나 글자를 머릿속으로 전달하는 일종의 통로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육안으로 받아들인 형상과 언어를 머릿속의 눈인 뇌안으로 인지하고 판단해 기억의 창고에 저장합니다. 이렇게 해서 쌓이게 된 형상과 언어를 두고 지식이라 말하지요. 

이른바 지식인이란 머릿속의 눈을 뜬 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교육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지식인을 양산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요. 이렇게 태어난 지식인들이 우리 사회를 이루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 갑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정할 수 없는 지식인 사회입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머릿속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온 결과겠지요. 이들에 의해 문화가 바뀌고 문명이 발전하고 그야말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니, 편리한 세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식인들에 의해 현실은 엄청난 가속도로 변모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식인들에게 고마워해야 하고 누구나가 이 편리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혼동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편리와 행복의 관계입니다.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 앞에서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스한 인정의 강이 흐르고 우리는 과연 서로를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인정과 사랑은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감정은 뇌안이 아니라 심안에 깃들어 있는 정신의 영역이지요. 뇌안만으로 살아가는 지식인 사회가 가져온 불행입니다. 지식인이란 실로 엄청난 위험성을 안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냉철하고 냉정하고 현실적인 득실의 계산에 재빠릅니다. 타인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합니다.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한 지식인은 자신의 삶은 영악하게 잘 꾸려갈지 몰라도 이웃과 사회를 에둘러 생각하지 못합니다. 지식과 인격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머릿속의 눈과 마음의 눈을 함께 뜬 이를 일컬어 지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제일로 큰 불행은 넘쳐나는 지식인에 반비례해 지성인이 소멸해 버린 데 있습니다. 현실과 실용만 중시하는 사회가 되고 교육마저도 그렇게 흐르다 보니 세상도 소위 오아시스 없는 사막으로 바뀌었습니다. 문학, 역사, 철학으로 대변되는 인문학의 경시는 이런 점에서 심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른이 사라지고 연장자들만 잔뜩 존재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다음 세대는 누구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배우고 올곧은 인생관을 배울까요?

새해를 시작하면서 제일로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점이 아닐까 합니다. 머릿속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 우리 사회를 바라보려는 진지한 노력이야말로 그악하고 불행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요? 지식이 아닌 지성이 살아 숨 쉬는 숭고하고 거룩한 눈동자가 가리키는 지점을 향해 가는 행복한 삶의 순간이 우리에게 언제나 올 수 있을까요? 기사나 뉴스를 보면서 슬픔과 분노보다 가슴 뭉클해지는 감동을 느끼고, 집을 나서면 내 삶의 본보기들이 거리 곳곳에 넘쳐나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건 비현실적인 허망한 노릇인가요?

머리 써서 돈 많이 벌려 하지 않고 행복을 많이 벌어 함께 나누려는 욕심이 더 큰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눈 뜨는 건 언감생심이겠지만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르는 채 일생과 함께 묻혀가고 마는 허망하고 불쌍한 영혼의 눈도 우리에겐 분명히 있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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