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 정상옥 <수필가>
  • 승인 2015.01.1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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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상옥 <수필가>

내리막길을 걷는 것 또한 녹록지만은 않다.

고단하게 헤치고 온 오르막 여정의 가속이 아직도 몸에 남아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찬다. 무엇을 찾아 그리도 헐떡대며 여기까지 올라왔던가.
등산의 목표가 꼭 정상에 도달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건만 난 뒤처지면 안 되는 줄만 알았다. 오르는 동안은 숨 돌릴 틈 없이 일행들을 제치려는 경쟁심과 정상을 향한 질주본능만이 날 몰아쳤었다. 계절 따라 피어난 꽃도, 나무도, 지저귀는 새들도 늘 그곳에 있었건만 내 눈은 보이지도 않는 정상의 높다란 고개만을 향해 걸어왔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의 외길을 걷듯이……. 

복작대던 도심에서 하루쯤은 벗어나 심신을 내려놓는 느림의 행복을 맛보리란 의도는 어디 갔는지. 마음만 앞선 도전은 고갈된 체력으로 급기야 현기증으로 이어졌고 그루터기에 앉아 숨을 고르며 지나온 여정을 돌아보니 그런 신체의 징후가 무모한 허욕을 잡아준 것 같아 고마워졌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고 새로운 선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기에.

배낭 안에서 짐으로만 느껴지던 커피 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시니 따스하고 그윽한 향이 목을 타고 온몸에 퍼진다. 그 순간, 내게 깃든 평온의 감사함에 눈물이 핑 돈다. 행복이란 꼭 재물의 숫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우치던 그날처럼. 

한동안 내 삶도 그랬다. 삶의 무게가 버거워 하루에도 몇 번씩을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들면서도 그럴수록 행복의 파랑새는 내 손끝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으며 자위했었다. 처해진 현실에 만족하며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인지하고 과감한 전환을 받아들였을 때 진정한 마음의 평화가 오고 그 평화가 금전의 숫자에 비길 수 없는 값어치로 내 삶을 옥토로 바꿔 놓는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지켜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가슴을 옥죄어오고 불안과 초조의 긴장감으로 어깨를 짓누르던 내 것의 무게를 과감하게 줄여버렸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실감보다는 신기하게 마음의 평화가 더 크게 깃든 새날이 있었다. 내 것이 아니었음에도 내 것인 양 지키려 했던 삭막한 세월이 오히려 하루를 살아가는 무거운 짐이었고 타인과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 아프고 쓰린 상처만 남겼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온 아둔함이란 것을 그때는 진작 알지 못했다.

정상이 아닌 여기까지에서 만족하며 멈춤을 선택한 후 무거운 등짐 안에서 꺼낸 따뜻한 커피 한 모금으로 지금 나는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하다. 아귀다툼 같던 경쟁사회에서 비록 재물의 숫자가 줄어들고 지갑이 가벼워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대로의 평안이 감사하다.

서툰 산행에서 정상에 오르지 못함을 포기라고 결코 좌절하거나 서러워하지 않으리라. 넘지 못한 저 높은 고개는 내가 다시 산을 찾는 그날의 이유로 남겨두고 꼭짓점은 또 다른 내 삶의 희망의 봉우리로 남겨두면 되는 것을. 그러나 다시 산을 오를 때는 여유를 갖으리라. 쉬엄쉬엄 오르며 길섶의 꽃과 이야기도 나누고 수풀 우거진 사이로 불어오는 산바람 품에도 안겨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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