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희망
은빛 희망
  • 임현택 <수필가·사회복지사>
  • 승인 2015.01.1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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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사회복지사>

찬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흥덕구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댄스스포츠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다. 댄스는 발레를 제외한 서양의 모든 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남녀가 한 쌍을 이뤄 음악에 맞추어 신체를 움직임으로써 예술의 미적 가치를 창조하는 이른바 창작 스포츠다. 

교습실 창문을 통해 나지막하게 음악이 흘러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밝고 경쾌하고 부드러운 선율에 맞추어 마룻바닥에 미끄러지듯 내딛는 스텝과 척추를 곧게 세우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화려한 춤사위. 댄스화와 의상을 갖춘 수강생들의 현란한 댄스 실력은 프로 못지않게 예사로워 보이질 않는다. 

그 중 가장 시선을 잡는 한 분이 계셨다.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칼이 더 많았다. 어림잡아 고희를 전후해 보이는 것이 실버댄스교습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어르신이시다. 그럼에도 리듬을 타며 다양한 동작을 리드하는 모습이 중년층과 다름이 없었다.

어르신은 이곳에서도 매너 맨으로 통하고 있었다. 어르신은 모든 일상생활이 다 그렇겠지만, 댄스는 남녀가 짝을 맞추어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상대에 예로써 몸가짐은 물로 품격을 갖춰 매사 관계유지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매너 맨 어르신은 댄스스포츠를 하면서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파트너에게 실례가 되지 않게 외모를 정갈하게 하고 언행일치가 되도록 노력을 하고, 지식과 정서 그리고 품성으로 교양을 쌓도록 인내한다고 하신단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매사에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사교성도 늘어났으며 상대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것이 습관화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굳어지고 관절부위마다 아프고 저리는 게 다반사이다. 그러나 스포츠댄스 동작은 위, 아래로 움직이거나 회전을 하는 동작으로 관절과 고관절을 잡아 주기도 하고, 척추관절을 반듯하게 해 준다. 뿐만 아니라 한 시간 이상 댄스를 하면 러닝머신 30분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정신건강에 매우 유익한 유산소운동으로 어르신들께 적극 추천하는 종목의 하나이다.

그동안 음지에서 활성화되던 사교댄스 역시 이제는 각 주민자치센터와 복지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서 요즘 실버댄스와 생활 댄스로 한참 인기라 한다. 

고령화 사회와 더불어 노인복지시설은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원이나 경로당에서 하루 종일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도 많이 있다. 오늘날의 어르신들은 그야말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가정의 경제에만 온몸을 바쳤으니 어르신들은 문화생활에 서툴고 멀기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어르신처럼 젊은 세대가 즐기는 그룹에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얼마나 정서적이고 낭만적인 일인가.

노인을 두고 은빛 혹은 실버라 한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한숨이 깊어진다고 하지만 노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만을 위한 은빛세계를 만들어 100세 시대의 새로운 삶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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