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대중문화 속 2015년 코드
TV, 대중문화 속 2015년 코드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5.01.0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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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
  
해마다 첫날이 되면 나 역시 해돋이에 나선다. 자정을 넘겼으니 분명 시간상으로는 새해가 시작됐으나 아직 어둠이 물러서지 않고 있는 신새벽. 올해 나는 인파가 몰려 북적거리는 동해안 해변이나, 평지보다는 일찍 해를 맞을 수 있다는 이유로 역시 사람이 몰리는 산 정상 대신 무심천 서쪽, 전망과 시야가 막힘이 없는 곳을 택했다.

홀로 동쪽을 등지고 걷는 해맞이길을 처량한 듯 했으나, 어둠을 뚫고 막무가내로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 본 순간. 내 등뒤로 이미 피어나는 여명의 아름다움에 그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아!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마 붉게 타오르기 시작해 눈이 부신 햇빛보다, 어둠 속에 혼자라고 느낄 때 이미 동을 트며 밝음을 준비하고 있는 자연의 섭리와 거역할 수 없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아로새겨진 수많은 은혜로움과 고통, 그리고 번민과 환희의 순간들과 그를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 나는 찬란한 해를 맞이하는 일을 접고 여명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말았다.

하필 새해 일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 샌드위치 데이인 탓에 아무래도 사람 개개인이 마음을 다잡기는 월요일인 5일은 돼야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일년을 365일로 정해 굳이 새 다짐을 하는 일이 의미 있다거나, 그렇다고 구태여 의미없음으로 치부함도 부질없는 일.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연말 연시를 하릴없이 TV에 매몰되면서 느낀 감성인데, 어떤 뉴스 앵커가 음력과 띠의 상관성을 강조하면서 “아직 양띠 해가 되지 않았는데, 굳이 세월을 앞당기는데 언론들이 호들갑떨고 있다”는 멘트에 충격을 받으면서 새삼 깨달은 바가 있음에서 비롯된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와중의 대중문화 가운데 요즘 가장 큰 화두는 아무래도 배우 최민수의 수상 거부와 탤런트 박영규의 수상 소감에 녹아 있는 <기억하라 세월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쌍용차 노동자와 함께 한 이효리, 코미디의 기본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 유재석의 소감도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또 하나의 백미는 문화방송 <무한도전>이 기획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인데, 90년대를 통째로 옮겨 회상하는 이 프로그램이 어쩌다 연말과 연시라는 극히 상반된 시간과 공간을 가로 지르며 1, 2부로 나뉘어 방송됐는지… 제작진의 속내가 사뭇 궁금하다. 추억이거나 기억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들은 다 지나간 것들이고, 새날, 새역사를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상의 강요로 넘쳐났던 기왕의 대중문화 코드를 감안하면 이는 분명 현재진행형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사실 (며칠에 불과하나)이미 지난 해가 돼버린 2014년 대중문화는 유난히 복고가 많았다. <응답하라 1994>를 비롯한 소위 <응답 시리즈>가 공중파의 요지부동함을 위협하고, 영화 <건축학개론>이 첫사랑과 복고, 혹은 ’나 돌아갈러식의 회귀본능을 자극하더니 급기야 <무한도전>을 통해 터져나온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통해 90년대가 통째로 부활한다.

이런 복고와 과거로의 회귀가 어찌하여 90년대로 집중돼 있을까. 단지 젊음이 그립다기 보다는 그 시절을 만끽했던 세대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거나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는 위축감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다만 좀처럼 구분이 쉽지 않은 아이돌의 정체와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치를 떨거나 겉만 화려한 치장에 대한 우려의 르네상스라면 이해할 만 하다. 

세월호도 잊지말고, 동시대의 서로 다른 아픔도 외면하지 말자. 편안했던 10여년전의 추억 대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동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는 진정성의 코드가 더 필요한 2015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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