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에서의 하루
물위에서의 하루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12.3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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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친구와 영화를 보았다. 매혹적인 여배우의 이름을 묻자 친구는 내게 “안 잘려니 졸려! 따라 해봐!” 라고 했다. 난 졸음에 겨울 때면 그 배우의 이름을 떠올리며 웃는다. 그녀는 기차에서 프랭크를 만났다. 프랭크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아픔을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났고 그녀는 그런 그와 사랑에 빠지는 엘리제로 열연한다. 우연히 마주한 영화 속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들쑤신다. 

대학시절, 생명을 품에 받아들이는 물을 보며 가보고 싶었던 그 물의 도시가 영화를 본 후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고픈 일은 어찌해서든 해보고야 마는 나는 길을 나섰다. 뼈를 파고드는 겨울의 한기가 외로움의 한기와 더해져 으슬거렸다. 하늘도 잿빛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도시에 비둘기들이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 

비발디의 겨울을 들으며 비발디 성당을 스쳤다. 참 청아한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며 맑고 투명한 겨울날의 찬바람을 살갗으로 느꼈다. 카사노바가 갇혀 있었다던 감옥의 창살을 보며 회색의 도시를 걸어 탄식의 다리에 다다랐다. 자유롭게 입을 맞추는 남녀의 모습이 노점의 화려한 가면들 사이에서 설핏설핏 스쳤다. 물위에 떠서 물의 도시를 굽어보고 싶었다. 선착장에서 검은 곤돌라에 몸을 실었다. 높은 건물의 비좁은 골목 사이를 곤돌라가 미끄러져 갔다. 이국적인 곤돌리에(사공)가 멋진 목소리로 이탈리아 가곡 ‘돌아오라 쏘렌토로’를 뽑아냈다. 굵은 목소리가 물위로 퍼져나가며 아련한 기억의 끝에 정박하게 했다. 옆자리에 탄 이름 모를 남자가 모자를 벗어 하늘로 빙글빙글 돌리며 “브라보”를 외쳤다. 가정집인 듯한 2층 창가에서는 예쁜 소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소녀의 하얀 손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겨울 병실 창가에서 퉁퉁 부은 하얀 손을 내려다보며 한숨 쉬던 아버지가 아프게 흔들렸다. 

아버지는 위암을 앓고 계셨다. 자식들 뒷바라지 하시느라 늘 동분서주하셨던 아버지는 위암말기가 되어서야 통증을 자각하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 고통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을 터인데도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정신줄 한 번 놓지 않으시고 꼿꼿하게 지내셨다. 한 대야씩 피를 토하시면서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난 그런 줄만 알았다. 견딜만하신 줄만 알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빨리 가실 줄은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아버지는 입원한지 15일 만에 맥을 놓으셨다. 대학 1학년 겨울 방학을 난 그렇게 아버지와 지냈다. 그해 겨울 병원에서 아버지와 나는 늘 함께였다. 그때만큼 오랫동안 아버지를 본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장사를 하셨기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들르는 손님 같은 존재였다. 늘 엄격하셨고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아버지가 오시는 날이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집안이 온통 고요한 세상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눈을 감으시며 내 손에 당신이 끼던 금반지를 쥐어주셨다. 그리고 바다에 당신을 뿌려달라고 하셨다. 파도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쉬고 싶다고 하셨다. 생명의 근원이면서 생명을 마감한 사람들의 영혼이 쉬고 있을 푸른빛의 액체를 보며 생각에 젖는다. 손을 내려다본다. 아버지가 주신 금반지가 반짝이고 있다. 힘들 때면 나는 이 반지를 만지며 나지막히 아버지를 불러 본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자신의 죽음으로 모는 거대한 아픔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것을 희생하여 자식을 길러내신 아버지를. 새해 첫날에는 아버지를 보듬은 검푸른 물을 찾아야겠다. 그리고 고요히 아버지를 그리며 하루를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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