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을 보라
문밖을 보라
  • 정규호 <칼럼니스트·문화기획자> 
  • 승인 2014.12.2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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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정규호 <칼럼니스트·문화기획자> 

어느 덧 2014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기록적인 한파까지 겹치면서 잔뜩 숨죽인 살림살이 탓에 서민들의 좁은 어깨는 여전히 펴지지 못하고 있다. 힘들기 그지없는 탓인가. 온정의 손길은 차갑기만 할 뿐만 아니라 잔뜩 야위고 있다.

그런 스산한 때문인지, 빨간 구세군 냄비는 을씨년스럽고, 달그랑 달그랑 울리는 종소리조차 힘을 잃은 듯하다.

가톨릭 신자들은 매달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발행하는 <매일미사>라는 책을 통해 신앙을 가꾼다.

이 책에는 매일 미사의 기도문과 성경말씀을 담은 독서, 화답송, 복음 등을 함께 싣고 그날그날의 전례 핵심과 말씀의 초대, 영성체 후 묵상, 오늘의 묵상 등의 주옥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주일인 오늘 날짜 <오늘의 묵상>에는 요절한 독일의 시인 보르헤르트의 소중한 구절이 소개돼 있다.

전후 독일의 비참함을 목격하며 쓴 희곡 <문밖에서>의 서문에 나오는 절규를 인용한 것인데 “그래서 그들의 집은 저 문밖에 있다. 그들의 독일은 저 밖에, 밤이면 빗물 속에, 거리에 있다. 이것이 그들의 독일이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성탄절은 ‘문밖에서’ 서성이며 절망하는 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2014년 한 해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때로는 나라와 온 국민 모두가 비탄에 잠겨 아직도 그 깊고 심각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그 밖에도 사회 전체이거나 개인의 한 해 살이를 되새기면 아마 기쁨 보다는 고통의 기억이 더 오래가고 길게 남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오늘 처음에는 최근 공중파를 휩쓸고 있는 드라마의 묘한 기류에 대해 살펴볼 생각을 했다.

청주에서 촬영이 되고 있다 해서 새삼 지역 사회에 관심이 높은 <힐러>를 비롯해 <피노키오>와 <오만과 편견>이 내가 주목하고 있는 드라마들인데, 하나같이 그동안 별로 다뤄지지 않았던 직업군에 대한 과감하고 거침없는 토로가 눈길을 끈다.

검찰과 언론의 직업 세계를 주저없이 다루는 이들 드라마들은 과거 민주와 반민주의 치열한 대립 구조에서 쟁취하려던 해직기자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기자의 윤리, 또는 검찰 내부의 권력 다툼을 과감하게 터치한다.

그런데 내가 이에 대한 언급을 망설이는 것은 드라마에서 제기되고 있는 모순이 현실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작 전에 픽션, 즉 꾸며낸 이야기임을 강조하는 마당에 현실과 가상 세계에 대한 구분과 판단력 상실, 혹은 이로 인해 현실이 허구로 치부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거리에는 <창밖을 보라. 흰눈이 내린다>라는 캐럴이 때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런 가벼운 노랫소리의 현실 밖에는 시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웃들이 있다. 기억하라 올해 우리나라에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다녀갔고, 그가 결코 가볍거나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많은 말씀을 남겼음을. 

우리가 이 겨울, 한 해를 보내면서 문밖을 한 번쯤 진심으로 돌아봐야 할 까닭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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