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가상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 정규호 <문화콘텐츠 기획자>
  • 승인 2014.12.0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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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정규호 <문화콘텐츠 기획자>

예술의 영역에 사진이 포함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75년 전인 1839년 프랑스의 미술가 다게르(Lou is-Jacques-M. Daguerre)가 은판사진법(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라는 카메라를 처음 발명함으로써 사진의 역사가 시작됐고, 이를 계기로 인간의 손에 의해 그려지는 회화외에 현실의 순간을 그대로 재현하는 사진찍는 행위 역시 하나의 예술 영역으로 포함됐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플라톤이 예술을 모방으로 간주해 탐탁치 않게 여겼음은, 그가 끊임없이 추구해 왔던 진리(이데아)와 대비해 모방, 즉 예술이 가상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런 예술의 영역으로서의 사진은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 방식을 밀어내고 있는 지금, 심지어 헝가리 출신 사진작가 라슬로 모호이나지에 이르러 “글자를 모르는 자가 아니라 이미지를 못 읽는 자가 미래의 문맹이 될 것”이라는 단언마저 정당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세태로 변하고 있다.

예술이 모방에 불과하다고 폄하한 플라톤의 입장에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지만, 우리는 지금 범람하는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 버추얼(Virtual)로 통칭되는 가상의 세계가 ‘폭로해야 하는 가짜’가 아닌 ‘실현시켜야 할 잠재성’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가상은 그 자체가 현실이 되었다는 미학자 진중권의 주장에 솔깃하고 있다.

문화콘텐츠에 적용되는 문화기술의 진화는 갈수록 가속도가 붙으면서 가상현실(VR:Virtual Re ality)은 이미 디지털 유목민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고, 이를 대신해 이제는 영상인식과 위치추적 기술을 통해 가상의 좌표를 현실 좌표와 교묘하게 섞어 가상과 현실을 중첩시키는 증강현실(AR:Augumented Reality)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어려운가? 여전히 박스오피스 1,2위를 오르내리면서 이미 대한민국 학부모들 사이에 자녀들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로 선택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의 열기를 대입하면 간단하다.

지구가 멸망의 위기에 다다르고 인류의 역사를 이어 갈 새로운 땅(또다른 별)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 상태에서 지구인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순간이동에 가까운, 그리고 블랙홀이거나 웜홀을 마다하지 않고 우주에 대해 도전에 나선다.

이런 흐름이 이 영화 <인터스텔라>의 뼈대를 이루는 줄거리다. 그런데 영화 <인터스텔라>를 본 관객 가운데 어쩌면 닥쳐 올 속도가 우리가 상상하기 보다 훨씬 빠를 수 있는 절체절명의 지구의 위기에 대해 얼마나 우려를 하고 있을까.

아니, 그런 위기의식은 차치하더라도 물리학과 환경공학, 생명과학 등 심오하고 까다로운 과학지식에 대해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얼마나 궁금해 할 것인가.

인류는 그동안 문자와 더불어 역사를 이어왔다. 그리고 문자와 더불어 진지해지려는 노력을 거듭하면서 삶의 궤적을 구조화해 왔다. 그러나 영화 <인터스텔라>에 열광하는 것처럼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야기 즉 서사화에 함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 되고 있다.

만들어진 이야기, 즉 서사화는 종종 현실에 대한 인식을 뛰어넘어 상상이 곧 현실이 되고 현실은 꿈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 쯤으로 환치되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이야기와 디지털 문화기술이 합쳐지면서 오히려 이미지는 현실을 능가하거나, 때로는 절대적으로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지경으로 만들기도 한다.

초창기의 사진이 ‘거기에 있(었)다’를 증명하는 존재의 근거였다면, 얼마든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거나 합성 또는 수정을 거쳐 변이되는 디지털의 세계에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도 얼마든지 이미지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우리가 지금 ‘살고있다’라고 인식하는 명제조차 현실인지 가상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진중권이 말하는 “사실은 허구로, 증명은 날조로, 진리는 오락으로 대체된다”는 과대포장이 과연 질소로 가득 채운 과자봉지에만 있겠는가.

오늘도 대한민국 검찰은 그림자와 씨름을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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