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미술관을 걷다
자연미술관을 걷다
  •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 승인 2014.11.0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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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가을이 시작될 무렵 친정에서 가까운 시안미술관을 찾았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시골길을 3㎞쯤 달렸을까 푸르른 잔디밭과 맑은 가을 하늘이 한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는 미술관을 만났다. 폐교가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는 흥미로운 사실과 정문에서 만난 풍경이 들어서기 전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예술의전당과 시립미술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즐거움과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전시관은 나에게 다소 불편한 공간이었다. 작품을 만지려는 아이와 만지면 안된다고 아이의 행동을 저지하려는 엄마와의 사투의 장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작품은 보는둥 마는둥 다시 밖으로 나오니 아이와 나에게도 평화가 찾아왔다. 그림만 보러 가는 미술관이 아니라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미술관들. 더불어 어린 아이와 함께 산책하며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서로 활동하면서 미술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 살펴보았지 작품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에 대해 살펴본 적은 없었다.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보고자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시작으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석된 책들은 여러권 접했지만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책은 처음인 것 같다.

도서 ‘자연미술관을 걷다’(이은화 지음·아트북스)의 저자가 찾은 미술관은 이름마저도 생소한 곳이었다. 중부 유럽의 최대의 강인 라인강을 따라 독일과 네덜란드에 있는 12곳의 미술관들. 규모와 명성을 뒤로하고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예술이 자연과 어우러진 숨은 보석 같은 곳을 찾아 들려주고 있다.

독일 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장 먼저 찾아보고 싶어진 촐페어라인은 저자가 소개한 도서관 중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독일 이미지와 가장 부합한 도서관이었다. 버려진 폐광단지 전체를 최소한으로 개조해 새로운 문화예술의 향기를 뿜어내는 곳으로 거듭난 것이다. 산업유산으로는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산업운동의 쾰른 대성당이라 일컬어지는 촐페어라인은 몇해전부터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방문하는 문화수도가 되어버렸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탄광단지이자 조각공원 같은 그곳. 언젠간 나 역시 가볼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이름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어서일까. 12곳의 미술관 중 그래도 네덜란드 미술관들이 나에게 더 와 닿았다. 눈이 소복이 내렸던 네덜란드의 겨울, 고흐와 베르메르, 렘브란트와 얀 반 에이크, 그리고 피터 브뤼겔까지 미술 감상만으로 포근한 나라였다. 그런데 왜 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가려다 포기했을까. 베네룩스로 남매를 데리고 떠난 ‘아이들은 길에서 배운다’의 저자 류한경도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 아이들에게 실컷 자전거를 타게 했다. 자전거를 타고 미술관을 도는 것만으로도 반나절이 걸리는 공원이나 다름없는 그곳을 나는 다만 가는 교통편이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찾아가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규모와 명성이 높은 미술관들을 먼저 둘러보아야지 하는 짧은 생각이 보석 같은 공간들을 놓치게 만든 것이다. 

“예술은 우러르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즐기기 위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내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말처럼 무르익은 단풍을 만끽했다면 가까운 공주 임립미술관에서 아이들과 색다른 하루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조형물 가득한 정원과 아기자기한 길과 아담한 저수지, 그리고 캠핑장이 함께 어우러진 미술관. 예술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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