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소격동과 소격효과
서태지, 소격동과 소격효과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예술부장>
  • 승인 2014.10.2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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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예술부장>

소격동은 한때 한국 현대사, 그중에서도 특히 민주화와 관련된 질곡이 짙게 드리워져 있던 곳이다.

군부독재의 서슬이 시퍼렇게 날이 서 있던 시절, 민간 사찰을 사주하면서 대학생들을 강제 징집해 교육한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가 위치해 있던 이 동네가 최근 ‘문화대통령’으로 불리는 가수 서태지에 의해 다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의 법정동인 소격동은 현대사의 질곡을 거친 뒤 지금은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데 국군기무사령부 자리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섰고 인근에는 수많은 갤러리들이 집중되면서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고 있다,

조선시대 국가 차원의 제천의식을 비롯한 도교적 행사를 주관했던 관청 소격서에서 유래한 동네 이름 소격동은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 동네 소격동을 서태지는 “나 그대와 둘이 걷던 그 좁은 골목계단을 홀로 걸어요. 그 옛날의 짙은 향기가 내 옆을 스치죠. 널 떠나는 난, 사실 난… 등 밑 처마 고드름과 참새소리 예쁜 이 마을에 살거예요. 소격동을 기억하나요. 지금도 그대로 있죠. 아주 늦은 밤 하얀 눈이 왔었죠. 소복이 쌓이니 내 맘도 설랬죠. 나는 그날밤 단 한숨도 못 잤죠. 잠들면 안돼요. 눈을 뜨면 사라지죠. 어느날 갑자기 그 많던 냇물이 말라갔죠. 내 어린 마음도 그 시냇물처럼 그렇게 말랐겠죠. 너의 모든 걸 두 눈에 담고 있었죠. 소소한 하루가 넉넉했던 날. 그러던 어느날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 잊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나에겐 사진 한장도 남아있지가 않죠. 그저 되뇌면서 되뇌면서 나 그저 애를 쓸 뿐이죠”라고 노래한다.

노래 <소격동>의 가사 전체를 음미하면 꽤 의미심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랑이 떠난 뒤의 절절한 심정을 노래함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어딘가 애틋하지 않고 또 어릴적 기억을 되새기면서 물질과 자본, 그리고 환경파괴를 은유한 것으로 치기에도 무언가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고 세상이 뒤집혀 군사시설이 관제 미술관으로 바뀌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해석 역시 설득력이 크지 않다. 남아있지 않은 단 한장의 사진이라는 표현을 두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와 경계, 혹은 그 깊음과 가벼움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추측도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문화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였던 서태지가 5년만에 컴백하면서 들고나온 <소격동>은 그 동네의 역사와 한국의 현대사, 그리고 군부독재와 미술관 중심의 문화와 예술이 숨쉬는 거리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대입시키면 사뭇 그 의미가 만만치 않다.

조선시대 관청 소격서의 이름에서 유래된 <소격동>과 그 본래의 의미는 다르겠으나 문화 예술을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론 가운데 <소격효과>라는 것이 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주창한 이 이론을 우리말로 쉽게 옮기면 낯설게 하기 혹은 소외, 이화, 생소화 쯤으로 할 수 있겠으나 본래 독일어 표현인 <Verfr emdung>이거나 영어의 <Alie nation Effect>에 포함된 철학적 사유를 충분히 담아내기에는 썩 마땅치 않다.

아무튼 <소격효과>는 그때까지 서양연극의 주류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이론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반박한 것으로 주목된다. 한마디로 <소격효과>를 정의하면 그동안의 대세였던 배우를 포함한 모든 연극적 요소의 관객과의 완벽한 일치와 몰입을 뒤집어 관객의 몰입을 일부러 방해하면서 연극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에는 금기시 되었던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건다든지, 심지어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요약해 주고, 무대장치를 일부러 노출시키기도 하며, 심지어는 한창 클라이막스에서 갑자기 극의 진행을 중단하며 무대와 관객을 철저하게 격리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소격효과>는 관객과의 소통과 비판적 시각, 그리고 객관적 관점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우리에게는 판소리가 그러하고, 마당놀이가 그러하니 원형질로서의 문화적 충분함과 진정성은 이를 얼마나 찾아내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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